급성맹장염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음식을 잘못 먹어 체한 것’이라며 소화제를 처방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 환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 결과는 보나마나다. 제대로 된 의사만 만났더라도 살 수 있었을 텐데, 그 환자는 엉터리 의사를 만난 탓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의 처지가 그 환자의 처지와 너무나 흡사하다.
사실 맹장염은 말기 암처럼 치유가 불가능한 병은 아니다. 간단한 수술로도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 그러나 때를 놓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마찬가지다. 6.2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은 급성맹장염을 앓고 있는 환자처럼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록 국민의 분노가 한나라당을 심판하게 만들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민주당과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1위를 달리고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제대로 진단하고, 올바른 처방을 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소생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도 한나라당은 의사를 잘못 만난 것 같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라디오 연설을 통해 엉뚱한 진단을 내렸다.
물론 진단이 잘못됐으니, 처방이 잘못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로 인해 한나라당의 운명 또한 끝장날 날도 이제 머지않은 것 같다.
6.2 지방선거에 나타난 민심은 무엇인가.
‘친이-친박 갈등을 봉합하라’는 주문인가. 아니다.
더구나 이 대통령의 말처럼 ‘세대교체를 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아니었다.
오직 ‘이 대통령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을 전환하라’는 추상같은 호령이었을 뿐이다. 여론조사가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3일 한나라당 패배 원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4대강 추진 때문’이라는 응답이 3명중 1명꼴인 34%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천안함 사태 등 북풍에 대한 역풍 때문’이라는 의견이 12.4%로 뒤를 이었고, 다음으로 ‘세종시 수정안 추진 때문’이라는 응답자가 9.9%로 3위를 기록했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응답자는 고작 7.4%에 불과했다.
즉 한나라당이 참패한 원인은 당내 친이-친박 갈등 탓이 아니라 ‘국민여론을 무시한 4대강 밀어붙이기’, ‘강경일변도의 대북정책으로 인한 전쟁분위기 조성’, ‘국민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세종시 수정안’ 때문이라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대거 낙선한 책임의 당사자는 바로 이명박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에 전혀 책임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 특히 남경필 정두언 의원 등 이른바 ‘MB 세대’라고 불리는 친이계 의원들은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에 제동을 걸기보다는 기꺼이 ‘나팔수’가 되거나 ‘거수기’ 노릇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따른 책임이 있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참패의 주범이라면 한나라당은 공범인 셈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처방은 너무나 황당하다.
‘세대교체’라니...
나이가 많은 친이 주류 대신 ‘MB 세대’라고 불리는 정두언-남경필 의원으로 당 주류 세력을 교체하면, 한나라당이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소리다.
오히려 국민을 우롱하는 그 같은 처방은 더욱 큰 국민의 분노를 불러와 결국 한나라당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말 것이다.
한나라당이 살길은 둘 중 하나다.
먼저 이 대통령 스스로 자신의 독선적인 국정운영방식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고치면 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반성하지 않고, 지금처럼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는 등 고집스럽게 나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이 이 대통령의 ‘나팔수’와 ‘거수기’ 노릇을 한데 대해 반성하고, 그를 당에서 내쳐 버리면 그만이다.
즉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고, 독선적인 국정운영으로 한나라당을 참패하게 만든 책임을 물어 정중하게 탈당을 권유하면 된다.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해당행위’로 얼마든지 출당조치 할 수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에서 과연 이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신 있는 국회의원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느냐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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