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청문회에서 군대 안 간 이유로 참담한 고초를 당할 때 너무 불쌍하다고 동정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식인이 군대 좀 안 갔기로서니 저럴 것까지야 뭐 있느냐고 비판하는 지식인도 있을 것이다. 다 지난 일인데 용서 좀 해 주면 안 되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군대문제만은 다르다. 우리는 전쟁의 비극을 겪은 국민이다. 6·25 전쟁 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숨을 잃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남편 자식을 잃고 평생을 한 맺혀 살았다. 동작동 현충원에 가면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꽃 같은 새댁이었던 할머니가 남편을 잊지 못하고 묘비를 쓰다듬으며 눈물짓는 모습에 가슴이 젖는다.
그렇게 수많은 목숨이 사라진 참혹한 전쟁에서 빠져나간 재주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소위 빽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좋은 집안 덕으로 권력 있는 아버지 덕으로 전쟁터에 나가지 않았고 외국으로 유학을 했다. 물론 죽을 염려는 전혀 없었다.
적탄에 맞아 죽을 때 ‘빽’ 했다는 한 맺힌 전설이 전해오는 한국에서 군대에 안 간 것은 마치 천형 같은 꼬리표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군대를 면제받은 사람을 국민감정이 도저히 용서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군대 기피자는 아예 공직을 맡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유난히도 병역을 면제받은 고위 공직자가 많은 이명박 정권이다. 위로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와 대통령 비서실장 국정원장 등이 이유야 어떻든 군대에 가지 않았다. 때문에 괜히 기가 죽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이 터졌을 때 지하벙커에서 회의를 해도 군대도 안 간 사람들이 모여서 무슨 회의를 하느냐고 비꽜다.
지금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당 대표로 출마한 후보자들이 열변을 토하고 있다. 11명의 후보자들이 나와 역시 한나라당의 인물 많음을 과시했다. 헌데 여기서도 병역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특히 홍준표 후보가 안상수 후보의 병역문제를 정면에서 공격하고 나섰다.
사실 안상수 후보자의 병역문제는 누가 봐도 좀 문제가 있어 보일 것이다. 안상수 후보도 법률가이고 문제를 제기한 홍준표 후보도 법률가다. 허위사실을 말한다거나 모략 음해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미 안상수 후보의 경우 그가 한나라당 원내대표로 있을 때도 병역문제는 늘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들었고 봉은사 명진 스님 퇴출과 관련해서 입 초사에 올랐을 때도 명진 스님으로부터 군대기피자란 호된 질책을 당했다.
이번에 야망을 품고 출마한 당 대표에서도 다시 병역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칼질을 당하고 있으니 이젠 병역의 ‘병’ 자만 나와도 이에서 신물이 날 것이다. 홍준표는 “병역 기피를 10년 하다가 고령자로 병역 면제된 사람이 당 지도부에 입성하면 한나라당은 ‘병역 기피당’이 된다”면서 병무청에서 확인한 안상수의 공직자 병역사항 공개조회 결과까지 제시했다. 거기다가 안상수가 당 대표가 되면 이 나라 청소년들이 아무도 군대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을 했다.
사실 ‘한나라당이 병역 기피당이 된다’는 홍준표의 말은 아프고 심각하다. 본의든 아니든 홍준표의 말은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포함된 것이라고 해석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대통령도 비록 질병이긴 하지만 병역을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안상수라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안상수는 ‘이미 검사로 임용될 때와 국회의원 4번 하는 동안, 5번이나 검증을 거쳤다”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지만 어쩐지 허전하고 설득력도 떨어졌다.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너무나 명백한 증거가 있고 국민정서가 안상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중에 별의별 이유로 병역면제를 받은 사람이 많지만 안상수처럼 ‘행방불명’이나 ‘고령’같은 사유는 아주 특별한 것이다. 안상수의 병역기피 의혹은 한나라당 대표 경선의 막판 쟁점으로 떠올랐다. 누굴 당 대표로 뽑느냐 한나라당 당원들의 선택이다. 수준이 평가될 것이다.
정치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것은 바로 도덕성과 직결된다. 지도자가 도덕성의 결함이 있으면 국민은 그를 지도자로 여기지 않는다. 신뢰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가. 정권 중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투쟁이 더욱 추하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도덕성과 직결이 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총리실이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할 말인가. 권력을 등에 업고 이권에 개입하고 인사에 개입하고 끼리끼리 모여 파벌을 만들고 실세라는 그들이 국정을 이렇게 농단하면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도덕성은 늘 지탄의 대상이 되어 왔다. 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이 도덕적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일까. 국민의 건망증 때문이다. 국민들의 멍청한 기억력 때문이다. 부질없는 관용 때문이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러도 시간이 지나면 국민이 용서해 주리라고 믿고 실제로 국민이 용서를 했는지 까먹었는지 비리 정치인은 다시 살아난다. 이래서 정치인이 국민을 우습게 안다.
국민이 본때를 보여야 한다. 지난 6.2 선거 때 종아리를 쳤다.
이번 7.28선거도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 정치인이 국민의 눈을 두려워해야 한다. 심판받을 자들은 반드시 심판해야 국민을 무서워한다. 잘못을 참회하지 않는 정치인은 결코 그냥 용서해서는 안 된다. 속없는 국민은 무시당해도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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