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살] '선관위게이트' 우려

고하승 / / 기사승인 : 2010-07-21 16: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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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검찰의 ‘표적 수사’ 얘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선거관리위원회가 ‘표적 조사’를 한다는 얘기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팬클럽인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정광용 회장과 4개 지부장에 선관위가 표적조사를 한다는 황당한 소식이 들린다.

실제 박사모 정광용 회장은 21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하위 기관에 본인과 4개 지부장을 ‘낙선운동을 한 것으로 엮어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문서를 입수했다”며 '박사모 조사 방향(중앙 지시사항)'이라는 제목의 A4용지 7페이지 가량의 문건을 공개했다.

정 회장은 "입수된 증거자료와 녹음 내용을 증거물로 해 서울중앙지검에 선관위원장과 사건 관련자 전원을 직권남용 혐의와 선거방해 혐의로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개된 문건에 따르면 '정광용과 4개 지부장을 지시 및 통모하여 낙선운동을 한 것으로 엮어 고발 검토', '2~3일 내로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고 추가 확인되는 것은 수사자료 통보할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명기돼 있다.

문건은 또 ‘사안이 심각하다. 박사모 조치해야 한다’며 ‘박사모 홈페이지 등에서 내용 확보해 철저히 조사되도록 하고, 제3자 입장에서 대충 조사하는 일이 없도록 강조해서 전달하기 바람’이라는 지시 내용도 들어 있다.

문건은 특히 ‘중앙위원회는 반드시 박사모를 조치한다는 의견이며, 그동안 각종 선거에 개입한 박사모가 더 이상 우리 위원회를 우습게보지 않도록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강도 높게 조사해 조치할 것을 주문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이 같은 박사모의 주장은 사실일까?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해 보인다.

박사모가 입수한 문건은 선관위에서 조사를 받던 한 제보자가 직접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 정광용 회장은 “제보자는 선관위에서 조사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20일 선관위로 가게 됐다”며 “이날 오후 조사 과정에서 잠시 틈이 나 선관위 직원의 책상 위에 문건이 있어 살펴보니, ‘박사모 회장을 엮어 넣으라’는 내용이 있어 이를 입수했다”고 문건 입수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그는 “그 서류에는 조사관이 낙서한 필체까지 있어 그 필체를 감정하면 즉시 허위서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박사모의 이 같은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물론 박사모가 7.28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서울 은평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사실이다.

한나라당 후보가 친이계 핵심이자 ‘MB 2인자’로서 사사건건 박근혜 전 대표와 대립하던 이재오 후보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 후보는 “박근혜와 1승1패했다”며 “이제 마지막 승부가 남았다”고 말하는 등 박근혜 전 대표 지지자들의 심기를 불편케 하는 발언을 무수히 많이 쏟아낸 바 있다.

그러나 박사모는 이재오 후보 ‘낙선 운동’이 아니라 ‘투표독려 운동’을 벌였다.

이에 대해 정광용 회장은 “낙선운동을 벌이고 싶지만 선관위가 불법이라고 해서 투표독려 운동을 벌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투표율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이재오 후보가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투표독려 운동은 이재오 후보에게 불리한, 사실상의 낙선 운동인 셈이다.

그러나 그게 불법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박사모는 지능적인 낙선운동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속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권력을 앞세워 일개 정치인 팬클럽을 탄압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재오 후보는 박사모의 이 같은 ‘투표독려 운동’에 대해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 후보는 즉각 박사모에 대한 고발을 취소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오히려 불법은 이재오 후보 측이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민주당은 21일 이재오 후보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키로 했다.

전현희 원내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이 후보가 ARS(자동응답)를 이용한 자동음성 안내멘트로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현행 공직선거법은 녹음기를 통한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전화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경우에는 송수화자간의 직접 통화방식으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재오 후보를 지지해 달라'는 이 후보의 음성녹음 메시지가 불특정다수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발송됐다고 한다.

‘MB 2인자’로 힘 있는 자신은 불법으로 선거운동을 해도 괜찮고, 힘없는 사람은 합법적인 운동도 불법으로 엮어 넣으라고 한다면, 그런 세상을 어찌 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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