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내에서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안상수 대표가 지난 22일 당·정·청 9인 회의에서 제안한 이후 쌀 지원 재개를 주장하는 의원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23일에는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와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가 각각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쌀 지원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현재 쌀 지원문제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 김무성 원내대표는 “북한에 쌀을 보내서 쌀값을 올리자 이런 황당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전시상황이나 다름없는 시국에 적국에게 군량미를 보내자는 소리와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라며 강경한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그 모습이 마치 15년전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잔인함을 빼다 닮은 것 같아 섬뜩하기 그지없다.
북한은 지난달 집중호우로 개성, 흥남 등에서 수해를 입은 데 이어 지난 21일에는 수풍호 주변에 내린 300mm 이상의 폭우로 압록강 물이 넘쳐 신의주시 압록강변 일부 마을이 침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중앙통신은 이날 오후 3시10분경 "압록강이 범람해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그 일대가 침수되는 등 홍수피해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15년 전에도 북한에는 지금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었다.
1995년 여름 이후 수차례의 홍수와 가뭄을 겪으면서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하게 됐던 것이다.
당시 북한 기상청은 10일 동안 약 600mm의 비가 내렸다고 보고하기도 했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하루동안 450mm가 내린 것으로 유엔은 파악하고 있었다.
1995년 초가을 북한은 홍수로 인해 농업생산이 황폐화되었으며, 식량부족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국제사회에 보고했다.
결국 식량위기로 인해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다.
북한의 공식적인 발표는 1995년에서 1998년사이에 22만명 정도가 아사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국제사회는 대체로 200만∼300만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북한 인구의 10%를 상회하는 엄청난 숫자다.
하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같은 상황을 외면하고 말았다.
오히려 김영삼 정부는 북한에 대한 쌀 지원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만 했다.
물론 북한의 경직된 태도는 한국내에서 식량지원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1995년 6월 27일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식량지원 선박에 북한의 관리가 인공기를 게양하게 하는 사건은 한국 내부의 여론을 심각하게 악화시켰고, 김영삼 정부는 이를 이용해 대북강경책을 펼치는 것으로 보수 세력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김영삼 정부가 북한에 지원한 쌀은 겨우 5만여톤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북한 주민 수백만명이 굶어 죽는 비참한 상황을 방치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시 우리에게 남아도는 쌀은 수십만톤이나 됐다.
쌀부자 집 아저씨가 이웃집 어른이 밉다고 그 집 어린아이들이 굶어 죽는 것을 방치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현재 쌀 대풍작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3년 연속 쌀 풍년을 맞아도 소비를 하지 못하고 비축만 하다 보니, 현재 비축중인 쌀이 140만톤을 넘는다.
그런데 올해 전국적으로는 쌀 생산량이 490만톤이 넘을 전망이어서 올해도 40만톤 정도가 남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180만톤 정도가 남아도는 셈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정부와 여당은 인도적 차원의 식량지원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김무성 원내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으려 하고 있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말 ‘제2의 김영삼’으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라는가.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버림받은 사람이다.
실제 지난해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 평가'를 조사한 결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은 박정희 (53.4%), 김대중(25.4%), 노무현(12.4%), 전두환(2.2%), 윤보선(1.8%), 이승만(1.6%), 노태우(1.3%), 김영삼(1.3%), 최규하(0.5%) 전 대통령 순으로 나타났다.
1.3%의 지지를 받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은 왜 하필 그런 사람을 닮지 못해 안달인지, 그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다시 말한다. 북한의 김정일 정권은 밉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죄 없는 주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대북 쌀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향후 통일비용을 줄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정말 이명박 정부가 평화적 통일을 바란다면, ‘통일세’라는 것을 만들어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 궁리하기 이전에 남아도는 쌀로 북한 주민들의 굶주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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