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비듬 장관’이라는 더러운 별명이 붙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장관 자격이 없다.
국회 청문회에서 그의 비리의혹은 털어도 털어도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비듬 장관'이란 별칭이 붙은 것이다.
그는 위장전입과 부인의 위장취업, 민간업체의 승용차 렌트비 대납 등 온갖 비리를 저질렀다.
또 문광부 차관 재직시 특수활동비 1억여원을 유흥비와 골프 접대비 등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법적 근거도 밝히지 못한 채 “특수활동비 내역은 밝힐 수 없다”며 끝까지 공개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래 까짓 거 좋다.
어차피 8.8 내각은 ‘비리 만물상 내각’으로 위장전입이나 투기, 탈세 등의 어지간한 비리 의혹은 신 후보자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의혹이니까 넘어간다고 치자.
그러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따로 있다.
그는 김대중 정부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서 장상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아주 강도 높게 비판하며 총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결국 2002년 첫 여성 국무총리로 지명된 장상 후보자는 위장전입 문제로 낙마했다.
물론 신재민 후보자의 당시 위장전입 비판은 정당했다.
그런데 정말 웃기는 것은 그런 칼럼을 쓴 시절에 정작 본인은 이미 4번째 위장전입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그는 한차례 더 위장전입을 했다.
실제 청문회 과정에서 그에게는 ‘비듬장관’이라는 별명 이외에 ‘위장전입 달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또 하나 붙었다.
그는 1995년 7월 경기 고양 일산 밤가시마을로 이사한 후 세 딸이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시점마다 좋은 학군으로 매번 위장전입을 했다.
일산 밤가시마을을 '거점'으로 자녀 진학시기에 맞춰 다른 곳으로 주소를 잠깐 옮겼다가 다시 원주소지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위장전입을 무려 5차례나 반복했다.
지난 95년 7월 밤가시마을로 이사한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인 같은 해 10월 일산 마두동 강촌마을로 전입했다.
이후 4개월만에 다시 밤가시마을로 재전입했다가 1999년 8월 강촌마을로 전입한 후 6개월 만에 다시 밤가시마을로 전입했다.
2000년 7월에는 신 내정자의 배우자인 윤씨가 차녀를 데리고 신 내정자와 세대를 분리해 일산 후곡마을로 전입했다.
이후 3개월만인 2000년 12월 윤씨는 다시 밤가시마을로 전입해 왔다가 다시 3개월만인 2001년 3월 2일 삼녀(당시 4학년 1학기 재학)와 함께 세대분리를 하고 후곡마을로 전입을 했다.
후곡마을 전입 후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2001년 3월 13일 윤씨는 다시 삼녀와 함께 밤가시마을로 주소를 옮겼다.
이쯤 되면 가히 ‘위장전입의 달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한다.
위장전입 문제 등으로 결국 낙마한 장상 국무총리 후보도 신재민 장관 후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것이다.
오죽하면 야당 의원이 "위장전입 의혹 수준이 아니라 위장전입의 교과서 보는 것 같다"고 한탄했겠는가.
그렇다면 신 후보자는 자진 사퇴의사를 밝히는 게 맞다.
더구나 그는 ‘위장전입 전력자 총리임명 불가’라는 내용의 칼럼을 썼던 당사자 아닌가.
그런 칼럼을 썼던 언론인 출신으로서 부끄럽지도 않은가.
그토록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이 장관, 그것도 언론을 관장하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된다는 사실은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런 후안무치한 사람이 아무 거리낌 없이 문광부장관 자리에 앉게 된다면, 이 나라는 정상이 아니다.
신재민 후보 스스로 물러나라.
만일 그가 자진사퇴하지 않고 오기로 버틴다면, 인사권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서 그의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
이 대통령마저 그를 감싸고돈다면, 한나라당의 뜻있는 의원들이라도 나서서 그의 장관 임명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우리 국민은 그 과정을 누둔 부릅뜨고 지켜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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