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개헌에 대해 “지금이 적기”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국회 '미래 한국헌법연구회‘ 공동대표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과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지난 24일 PBC라디오 ’열린세상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정기국회가 개헌의 마지막 기회”, “이제는 시대 변화를 헌법이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각각 개헌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여야를 초월해 개헌 필요성에 동의하는 의원들이 상당수’라는 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국회 내에 개헌 특위조차 구성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이들은 ‘차기 대권주자들 때문’이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이주영 의원은 “소위 잠재적 대권 주자들, 정파에 지도자들이 있는데 각자 원하는 개헌 방향이 다르다”며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합의를 이룰 수 있겠냐고 생각들 해서 본격 논의에 들어가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낙연 의원 역시 “몇몇 지도자들이 개헌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번 개헌은 사실은 여야가 합의한 것”이라며 “합의에 따라 개헌하자고 말하는 것이지 그걸 가지고 과민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결국, 개헌은 필요한 것이고, 여야가 합의한 것인데 차기 대권주자들 때문에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일단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
또 17대 국회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논의를 거부하면서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하자’고 6개 정당이 합의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들 때문’이라는 판단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필자가 동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5년 단임제의 한계로 인해 4년 중임제를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공감대가 국민들 사이에 꽤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 결과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해 개헌을 실시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가장 선호하는 권력구조로는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가 꼽혔다.
<한국일보>가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우리나라에 어떤 형태의 권력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꼽은 응답자는 41.1%에 이르렀다. 이어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34.1%) 의원내각제(10.4%) 이원집정부제(3.7%) 등의 순이었다.
<문화일보>가 지난 13일과 14일 양일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개헌시 적합한 권력구조로 4년 중임제(34.1%), 5년 단임제(29.7%), 이원집정부제(18.7%), 의원내각제(9.9%) 순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4년 중임 대통령제 실시여부를 논의하는 것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여야 개헌론자들은 국민이 생각하는 개헌과는 그 방향이 전혀 다르다.
이게 문제다.
실제 개헌론자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이구동성으로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안상수 대표와 이재오 특임장관이 분권형 개헌론자로 연일 개헌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민주당 개헌론자인 이낙연 의원 역시 분권형 개헌론자다.
실제 그는 현 제도에 대해 “대통령에 의한, 한 사람의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
이 의원 외에도 민주당에는 분권형 개헌론자들이 상당히 많다.
지난 4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강봉균 의원은 '분권형 개헌론'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워 박지원 후보와 결선 투표까지 올라갈 만큼 많은 지지를 받았다.
지금 국민들이 개헌론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이 적당히 야합하여 국민들이 직선으로 선출한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고, 대신 국회의원들이 선출한 총리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 분권형 개헌을 추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국민은 자신이 직접 국가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려는 직선욕구가 강하다. 이를 국민으로부터 빼앗아 가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영호남 패권주의자들의 영구집권 음모가 분명한 이원집정부제 논의를 어떻게 묵인할 수 있겠는가.
경고하거니와 이원집정부제 개헌은 ‘이명박 총리’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이 이에 동의할 경우, ‘MB 장기집권 도우미’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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