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훈풍 기대는 금물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9-30 11:4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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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 교수)

쌀 오천톤이 북에 지원된다.

북의 수해를 돕기 위해 대한적십자사가 보내는 쌀이지만 정부의 예산으로 충당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첫 쌀 지원이라는 상징성이 눈길을 끌만하다.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기 위해 남북 당국간 채널도 복원되었다.

북은 군사실무회담도 먼저 제의했다.

천안함 이후 파탄지경의 대결국면을 생각하면 최근의 잇따른 해빙 분위기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적 관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쌀을 준다면서 5천톤으로 결정한 이명박 정부의 의도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거나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음을 드러내는 것에 불과하다.

2006년 수해지원 당시 남측은 쌀 10만톤을 제공했다.

당시에도 북핵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었고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시점이었지만 남북관계를 유지하는 신뢰의 끈으로서 쌀 10만톤이 결정된 것이었다.

이번엔 차원이 다르다. 수해지원 자체도 여야와 여론의 요구에 떠밀려 뒤늦게 결정했고 처음엔 쌀을 제외했다.

농민단체가 자발적으로 모은 쌀마저도 반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북한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아도는 쌀 보관비와 쌀값 안정을 위해서라도 대북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여야를 막론하고 빗발쳤음에도 이명박 정부는 꿈적하지 않았다.

북에 쌀을 줄 바에야 개돼지용 사료로 쌀을 쓰겠다는 으름장마저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북이 전통문을 통해 쌀지원을 공식 요청했음에도 그 사실마저 숨긴 채 시간을 끌었다.

조건없는 대승호 선원 석방에 이어 북이 이산가족 상봉을 전격제의하자 결국 이명박 정부는 쌀지원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쌀지원이 결정된 뒤에도 여당 대표와 국정원은 입을 맞춘 듯 북한의 100만톤 군량미 비축을 거론하고 나섰다.

대규모 인도적 지원은 절대 불가라는 선을 미리 그은 것이다.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명박 정부는 쌀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북의 인도적 공세에 마냥 거부만 하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결국 수동적으로 쌀지원을 수용해야 했고 고심 끝에 5천톤을 결정한 것이다.

이번 쌀 지원은 그래서 주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춘향식으로 주는 것에 불과하다.

5천톤 결정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군대로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햇반 제공이라는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까지 거론되었다.

그냥은 못주고 밥으로 쪄서 주겠다는 발상이다.

네티즌들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대신 이명박 정부가 ‘햇반정책’을 채택했다고 비웃을 만도 하다.결국 쌀 5천톤 지원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금강산관광 재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이명박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관광 재개는 결코 불허한다는 강경한 입장이 지배적이다.

천안함에서 벗어나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각국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명박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북이 먼저 사과해야 하고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여야 한다는 청와대 고위 비서관의 발언이 이를 확인해준다.

천안함 제재국면을 지속하면서 대북 압박으로 북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예의 강경기조는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대통령과 참모들의 생각 역시 변화하지 않았다.

북의 대화 제스춰는 오히려 일관된 대북 압박의 성과로 간주되고 따라서 압박을 더 하면 북이 굴복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북한 역시 최근의 잇따른 대화 제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그 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입장과 구조를 갖고 있다.

2009년의 대남조치가 이명박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려는 마지막 기회로서 전략적으로 접근한 것이라면 2010년 지금의 대남조치는 이미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은 뒤의 전술적 접근의 가능성이 높다.

작년의 학습효과를 북은 잊지 않고 있다.

오히려 북은 중국과 미국의 6자회담 재개 요구에 부응하는 분위기 조성용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개미가 날라도 될 만한 쌀 오천톤을 북이 선뜻 받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주기 싫은 쌀 5천톤을 결정한 이명박 정부나 이미 남측에 기대를 접은 북한의 전술적 의도는 결국 남북관계에 낙관보다는 비관적 전망이 아직 우세함을 의미한다.

제비 한 마리가 온다고 해서 봄이 오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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