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터졌을 때 내 나이 열다섯. 어린애였다.
일찌감치 도망쳐서 잘 먹고 잘 사는 선택받은 높은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은 이승만의 ‘서울사수’라는 사기방송으로 한강을 넘지 않았다가 비도강파로 몰렸고 원치 않은 빨갱이로 낙인찍혀 귀한 목숨 많이 죽었다.
무슨 원한이 그리 심했던지 아니면 정말 그래서 그랬는지 저 사람 빨갱이라고 눈짓 한 번 하면 그냥 데려다가 즉결처분했다. 법 따지지 말라. 총알이 법 가리고 날아 가나. 이게 바로 무차별 살육이었다.
먹고 살 수가 없으니까 누이 혼수로 어머니가 마련해 둔 유똥치마 감 들고 시골로 내려가서 보리쌀 한 말과 바꿔 새끼줄로 멜빵 만들어 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백여리 길을 하루에 왕복하자니 여름 더위에 허기는 지고 죽을 맛이었다. 그러나 더위는 그래도 약과였다.
지금의 분당쯤이었을 것이다. 시골길은 난민들이 많이 다녔다. 갑자기 전투기가 날라 왔다. 요즘은 모를 것이다. ‘무스탕’이라는 프로펠라 전투기다.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와 기관총을 갈겨댔다. 아비규환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리라. 기총소사로 사람들이 퍽 퍽 쓰러졌다. 논두렁으로 뛰어들어가 엎드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흙 범벅이 된 채 기어 나온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즐비한 시체와 낭자한 붉은 피. 어린애가 죽은 엄마의 젓을 빨고 있었다.
무차별 기총소사로 그렇게 우리 죄 없는 착한 백성들이 죽었고 무차별이라는 것이 참 무섭고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다. 죄를 졌으면 벌을 받아야 되고 죽을죄를 졌으면 죽어야 된다. 그러나 무차별이란 무슨 죄라고 묻지도 알리지도 않고 죽이는 것이 아닌가.
오보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인터넷 기사를 읽었다. 이것도 무차별이었다. 경찰이 국정감사 자료로 제출한 것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경찰 자료에 의하면 경찰이 시민단체 언론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무차별’적으로 ‘비밀 사찰’ 한 것이 드러났다.
2009년 9월3일자 경향신문이 보도한 ‘경찰, 인터넷 댓글 실시간 감시체제’가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서프라이즈’도 그 대상에 올라 있다는 사실이다.
‘서프라이즈’라는 공개된 인터넷 정치포탈 매체에 무슨 비밀사찰을 하는가. 가령 경찰이 설정한 특정한 ‘키워드’를 칠 경우, 서프라이즈에 이 단어가 들어간 모든 글이 검색·수집되는 것이다. 가령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칼럼도 경찰이 특정한 ‘키워드’를 입력하고 그 단어가 내 칼럼 속에 들어 있다면 그대로 검색 수집된다는 것이다. 손이 떨려 자판을 두드릴 수가 없다.
이거야말로 무차별이다. 먼저 너무나 살벌한 예를 들어서 더 실감이 날지 모르겠으나 경찰이 하고 있는 이 무차별 검색도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정신활동 영역을 무차별로 유린하는 것이다. 부차별 기총소사와 무엇이 다른가.
죽지 않아서 다른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그렇게 되었는가.
헌법에 보장된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말하면 참으로 순진하다는 놀림을 받을 것 같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꼭 이렇게 해야만 빨갱이를 잡아내서 국가 안보를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그 정도로 우리의 보안이 허술하단 말인가.
더구나 이들 무차별 검색에 사용되는 돈은 국가정보원의 예산이란다. 그래서 인터넷 사찰은 검색의 대상·내용·예산 등이 전혀 통제를 받지 않는다니 경찰은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 무슨 짓을 어떻게 하는지 국민은 알 도리가 없고 그냥 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주위에 무차별이 너무나 많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무차별 민간인 사찰은 주로 노무현 측근들이 대상이었다. 옷자락만 스쳤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 무차별 정치보복은 급기야 전직 대통령이 스스롤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만들어 냈다.
이 땅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무차별이라는 비인간적 행위를 피해 갈 재주가 없다. 지금 이 나라의 언론 역시 무차별 탄압의 대상이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탄압받은 언론은 세계 언론에 조롱거리였다. 조선 동아일보의 대량기자해직과 언론통폐합은 무차별 언론학살이었다.
지금 우리는 또다시 언론의 무차별별적인 탄압을 지켜보고 있다. 몇몇 언론사 사장이 저지르고 있는 이 작태는 기자 해직과 프로그램 없애기로 나타난다. 너희가 언론인이냐는 질문에 기자들은 대답을 못한다.
연합뉴스 기자의 65.9%가 자기 회사 기사가 공정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무엇이 공정하지 않다는 말인가. 사장이나 편집국장이 대답 좀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연합뉴스뿐이 아니다.
조중동은 아예 제외해 주는 것이 그들 기자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해 주는 것이다. KBS와 MBC를 보면 무차별이라는 것이 실감 난다. 굳이 설명을 할 필요도 없다. 설명을 하면 그들이 오히려 더 참담해 질 것이다.
국제기자연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언론 자유가 위축된 상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며 해직된 언론인들의 복직을 요구했다. 국제기자연맹의 성명서를 읽으면서 등에서 땀이 솟는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YTN 기자 6명, MBC 기자 2명이 해고당했고 160명 이상의 기자들이 정직·감봉·경고 등 징계조치를 받았다.”
“이명박 정부는 한국의 언론자유를 회복하고 YTN, MBC에서 해고된 언론인을 복직시켜야 한다.”
무차별이란 언제 어디서 자행되든지 옳지 않다. 무차별을 두렵다. 자신이 학살의 대상인지도 모르고 죽는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는 고통을 생각이나 해 보았는가. MBC가 ‘W'나 ’나 ‘후 플러스’ 없애면 국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거 모를 줄 아는 모양인데 참 딱하다.
사무실 초인종을 누르고 낯선 얼굴이 들어선다. 정보과 형사다. ‘서프라이즈’에 요상한 글이 올라왔고 압수 수색영장도 발부받았다고 한다. 압수수색 영장이라고 하니 법은 지켜야지. 수도 없이 당했다. 그러더니 실적주의 비판이 나오고 세상이 시끄러우니까 좀 뜸했다가 다시 자주 나타난다.
어느 놈이 어디서 글을 올리는지도 모르는데 압수수색영장 들이밀면 황당하다. 약이 오른다. 경찰에 사무실 하나 차려주면 안 되나. 별생각을 다 한다.
비판이 없는 사회는 고여 있는 웅덩이나 다름이 없다. 반드시 썩는다. 국정감사에서 드러나고 온갖 잡다한 비리들이 발표될 때마다 국민들은 오장이 뒤집힌다. 비리가 들통나면 관리들은 속이 상하는가. 어물어물 넘어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월이 가고 감추었던 비리가 세상에 나타나면 그때는 이미 치유불능이다.
나라가 망한다. 나쁜 짓 한 인간들이야 천벌을 받아도 당연하지만 세금 내고 썩은 관리들 말 잘 들은 백성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던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전쟁이 나자마자 도망치기에 바빴고 영용한 국군은 낙동강까지 후퇴하기에 바빴다.
이제 우리는 막강국군이다. 세계에서 몇 등이라던가. 국감에서 드러난다. 탱크 포는 뽀개지고 군화는 물이 새고 장갑차는 도강을 하다가 물이 들어와 탱크 병이 익사한다. 전투기가 추락하고 고속유도함정은 갈지 자다.
김태영 국방장관은 북한 주민이 방송을 들으라고 라디오를 공중투하 한다고 하던가. 이게 국방이 아니다. 태안 앞바다 특수훈련소에 여름철 고위공직자 가족들이 휴가나 가고 사병은 그들이 뒷바라지나 뒤 청소나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게 정부가 정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신 나간 무차별 ‘비밀사찰’ 할 생각 말고 국민에게 솔직해라.
국민들이 모르는 줄 알지만 실은 정부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직하면 되는 걸 왜 이리 못하나. 정직하기가 그렇게 힘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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