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인물에 관해 칼럼을 쓰면 내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더러운 인간은 쓰면 꼭 쥐똥 씹는 기분이다. 하지만 칭찬할 인간보다 욕을 할 인간이 더 많으니 도리가 있는가. 이 땅에 태어난 운명이라 생각하는 수밖에.
연극을 봤다. 이 나라 당대의 명배우 명계남이 주연이니 연기야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다가 여균동이라는 개념 있는 감독과 어둠의 시대를 관통하는 혜안의 탁현민 교수가 기획한 작품이니 품질을 따지고 자시고 할 필요조차 없는 보증수표다.
더구나 어느 개자식들의 간섭도 용인되지 않는 해방공간에서 만끽하는 자유는 바로 우리가 목매 갈망하는 ‘사람사는 세상’이 아니든가. 무더운 여름에 마시는 생맥주 맛이다. 참 기분 좋다.
‘아큐, 어느 독재자의 고백’은 ‘코르마’라는 가상의 국가 통치자 ‘아르피무히 마쿠’라는 놈이 동물학대죄로 처벌받기 직전 자신의 독재에 관해 늘어놓는 모노드라마. 막이 오르기 전(막도 없지만) 탁현민 교수가 한 말씀 하시는데 이 말이 죽인다.
“많은 관객들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이 연극이 결코 어느 한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풍자하거나 비판할 의도가 없다고 말입니다. (관객웃음) 아닙니다. 이 연극은 특정인과 그를 에워싸고 있는 무리들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에 분명 의도가 있습니다. (관객웃음)”
탁현민 교수는 당당하게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조롱 좀 하겠다는 것이며 폄훼도 하겠다는 것이며 비난도 하겠다는 것이다. 위선의 세상에서 얼마나 정직한가.
연극을 보면서 문득 동물로 전락한 아니 개로 전락한 자신을 발견한다. 독재자의 입에서는 원색적인 쌍욕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기억력 좋은 관객이 세어 봤는데 200번이라고 하던가. 독재자가 말한다.
“C8!! 네놈들이 뽑았지 않아. 뽑아 놓고 왜 지랄이야. C8!”
그 욕설이 정수리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래 할 말이 없다. 뽑아 놓고 왜 지랄들이냐. 그러나 독재자 놈에게 할 말이 있다. 네가 속이지 않았느냐. 언제 독재한다고 했느냐. 민주주의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속인 놈이 잘못 아니냐. 속은 놈도 잘못이지만 너는 더 나쁜 놈이다.
그 말은 독재자의 말인가. 명계남의 말인가. 명계남의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너희들이 노무현을 죽였지 않아. 그러면서 지금 슬퍼하고 있냐. 이 C8새끼들아. 그렇다. 연극을 보면서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 자책이다. 맞아 우리도 책임을 져야 돼. 바보들은 좋은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없어.
동물학대죄로 감옥에 간 독재자. 학대받은 동물은 누구인가. 우리 자신은 아닌가. 맞아 죽고 분신해 죽고. 그게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너무 자학적인가. 연극을 보며 내내 노동자의 분신도 네놈들이 선택한 것이라는 독재자의 조롱이 나올까 겁이 났다.
객석에서 폭소가 터지고 한숨이 나오고 분노가 터진다. 전신으로 연기를 하는 명계남의 눈물이 보인다. 가슴에서 흐르는 눈물이다.
독재자 명계남에게 실컷 조롱을 당하고 욕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너는 뭐냐. 살아있는 이유는 뭐냐. 네가 살아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개처럼 맞아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제 깐에 비판 칼럼 줄이나 쓴다고 할 일을 한다고 생각을 하는가. 죽을 용기도 없는 치사하고 더러운 놈.
탁현민 교수인지 여균동 감독인지 이런 말을 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 몇 명이나 연극을 보러 올 것인가 걱정을 했단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 만원이다.
10월31일 서울공연이 끝나면 지방공연을 한다. 그리고 다시 12월에 연장 공연을 한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소망한다. 이 공연을 온 국민이 보았으면 한다. 공연을 보면서 국민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면 그것은 국민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엄청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믿는다.
한나라당 당직자나 당원들도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 그럼 많은 것을 느낄 것이라고 믿는다. 이명박 대통령을 유사 이래 최고의 지도자라고 믿는 당원들일지라도 말이다.
온몸으로 아니 영혼으로 연기를 해 내는 명계남을 보면서 가슴으로 울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숨 쉬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독재자(명계남)는 자신의 혓바닥에 놀아났던 국민들이 돌아선 것을 배신이라 비웃으며 자신을 변호하는 궤변을 늘어놓는다.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한 어떠한 반성과 가책도 없다. 영원한 독재자, 아니 죽어서도 독재자로 남기를 원했을 것이다.
명계남은 ‘어느 독재자의 고백’이란 연극 제목을 반대했다고 했다. ‘삽과 쥐’로 했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제목이야 아무러면 어떠랴. ‘4대강의 고백’이라고 하던지 ‘어느 민주대통령의 고백’이라고 하던지 내용을 보면 모두가 알 일이다.
다만 이러한 연극이 오늘의 이 땅에서 만원의 관객을 모으고 공감의 박수가 터지는 것을 슬퍼한다.
지금 이 지구 위, 아프리카 오지나 아마존 정글 깊숙한 곳, 아니 우리 주위에 ‘코르마’라는 독재국가와 ‘아르피무히 마쿠’ 비슷한 독재자가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곳에서 독재자에게 개처럼 맞아 죽고 분신해 죽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독재자에게 맞아 죽는 동물의 운명을 거부한다. 또한 우리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독재자의 폭력도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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