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시 구청장들이 단단히 화가난 모습으로 종로구청 기획상황실에 모였다.
전날 서울시가 무려 20조 6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서울시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초등학교 전면 무상급식' 예산은 단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시가 무료급식비 278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저소득층 초중고생 20만명 급식비'로 구청장들이 요구하는 ‘전면무상급식’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구청장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구청장들에게 사실상 ‘전면전’을 선언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종의 기싸움이다.
실제 서울시의 예산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위한 예산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우선 시는 오세훈 시장의 공약사항인 ‘3무 학교 사업’에는 무려 1445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편성됐다.
특히 ‘자치구 길들이기 예산’이라는 비난을 받는 ‘인센티브’ 사업에도 15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
실제 시가 자치구 청렴도 평가를 해서 순위를 매기는 등 22개 인센티브사업을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자치구는 어쩔 수 없이 인센티브 사업에 매달리게 되고, 결국 구청장은 오 시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서울시와 자치구가 철저하게 주종관계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예산에 대해 서울 구청장들은 “필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재득 구청장협의회장은 “서울시가 2011년 인센티브 사업에 150억원을 예산 편성했다”면서 “이를 전면 거부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차라리 그 돈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무료급식을 실시하라는 것.
이런 구청장들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심이 이런 구청장들의 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막무가내다.
하지만 고집을 부린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예산안이 서울시의회를 무난히 통과할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실제 허광태 시의회의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자리에서 "무상급식과 내년 서울시 예산 처리를 연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즉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경우, 예산안을 처리해 주지 않겠다는 뜻이다.
현재 시의회는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그것도 지역구 시의원 106명 가운데 79석을 민주당이 차지했다.
민주당이 과반을 훨씬 넘는다.
따라서 서울시 예산안에 무상급식 예산을 포함시키지 않으면, 내년도 예산안은 시의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대체 왜 이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시비와 구비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는 부자인데, 자치구는 가난뱅이가 되어 버렸다.
자치구는 2010년도 취·등록세 징수에 따른 조정교부금 재원이 약 2000억원 정도 감소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노원구가 약 151억원, 은평 · 중랑구가 129억원, 성북구가 127억원, 관악구 124억원, 강북구가 116억원, 강서구가 111억원 등으로 대부분 강북지역의 자치구들이 약 50억원에서 약 100억원 이상의 예산 감소가 예상된다.
반면 서울시는 지방소비세가 도입됨으로써 약 3,884억의 추가 세입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이게 문제다.
지방소비세의 재원은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5%이며, 향후 10%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지방소비세로 마련되는 재원은 전액 시세로만 되어 있어 25개 자치구 재정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게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부가가치세의 납부자는 최종 소비자다.
그 소비자들이 모두 자치구에 살면서 자치구로부터 행정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는데, 그 돈이 고스란히 서울시에만 들어간다는 것은 이치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따라서 지방소비세의 최소 50% 정도는 자치구에 배분되도록 하는 게 맞다.
특히 자치구들은 복지사업의 지방이양과 수요증가로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자치구 재정부담 사업의 신설, 시비지원 증단 또는 축소 등을 계획하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우리 <시민일보>는 자치구의 재정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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