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식 리더십의 폐해, 말만 앞세운 지도자들

안은영 / / 기사승인 : 2010-11-18 16: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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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봉승 극작가 (신봉승 극작가)

백 마디의 말을 입에 담기는 조금도 어렵질 않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실천은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그 실천이 공익을 위한 것일 때는 자신은 물론 가족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하는 어려움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옛 성현들은 아무리 큰 학문이라도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하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한국형 리더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따져 볼 때가 되었다. 너무 오랜 세월동안 서구의 리더십에만 맹종하였던 폐해가 너무 크고 뼈아프기 때문이다.

카리스마(charisma)라는 말에 담겨진 서양형 리더십의 본질은 ‘신의 은총’이라는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말하는 ´카리스마의 저장량(stock of charisma)´ 또한 신의 은총을 저장한 사람일수록 카리스마가 많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다.

그러나 ‘신의 은총’이라는 개념이 없거나 미약하였던 우리의 선현은 무엇으로 리더의 덕목을 거론하였을까. 막스 베버가 말하는 ‘신의 은총’이라는 말을 우리 말로 바꾸면 ‘위신의 저장량’이 되어야 마땅하다.

위신이 있다는 말은 꼭 벼슬이 높거나, 돈이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위신은 솔선하여 수범하는 사람에게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 저장량이 많으면 많을수록 지도력을 오래 유지할 수가 있다.

대저 이런 사람들을 조선시대에서는 선비(山林)라고 했다. 그러므로 한국형 리더십은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 온 선비들의 정체성에 뿌리를 두게 된다.

명문대가에서는 영의정이 몇 사람이나 나왔느냐를 따지지 아니하고, 대제학(大提學)이 몇 사람이나 나왔느냐는 것으로 자랑을 삼고자 하는 것도 위신의 저장량에 따라 리더의 덕목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영의정을 일러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야말로 더 올라갈 자리가 없을 만큼 관직에서 으뜸가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대제학은 영의정보다 낮은 자리에 있고,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도 그 명예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한결같이 존경과 신망을 받게 된다.

영의정은 파직이 되어 쫓겨나는 일이 있어도 대제학은 파직이라는 것이 없다. 스스로 임기를 정하고, 그만두고 싶을 때 사양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아우르고 이끌어나갈 한국형 리더의 조건은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 찾아야 확실해진다. 그것은 예상이 아니라 결과인 까닭으로 모든 것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구체적인 바탕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지식인의 참모습은 어떤 것인가. 지식인의 참모습을 지키면서 산 사람들은 어디에서 사는 보람을 찾았는가. 심하면 그들이 죽은 다음에는 어떤 예우를 받았는가에 대한 대답까지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우리의 자랑인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서양의 리더십 이론이 성립되기 이전의 사실들을 아주 정확하게 적어놓고 있다.

한국형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 이에 대한 모든 해답은 우리의 문건에 그 실체가 밝혀져 있다.

그런데도 배웠다는 사람들은 서양의 글에 의지하여 리더의 덕목을 찾으려는 허상에 빠져있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 돌진할 줄 알아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나설 줄 모르는 이 땅의 지식인들은 지금도 서양식 리더십에 매달려 있다.

그 결과가 자신의 언행과 행실이 같지 않은 오늘의 꼴불견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 우리 지식인들에게는 산림(山林)의 덕목이 필요하다. 나라에도 혼이 있어야 빛이 나지를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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