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경수로를 건설하는 북한의 의도

안은영 / / 기사승인 : 2010-12-08 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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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전성훈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

1. 서론

북한이 발전용량 25~30MWe 규모의 중소형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천안함 사태 이후 한동안 수면아래에 잠복해있던 북한핵문제가 다시 주요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사실을 전달한 사람은미국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의 소장을 역임한 핵과학자 해커(SiegfriedHecker) 박사와 한미경제연구소(KEI)의 프리처드(Jack Prichard) 소장이다. 두 사람은 북핵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주 평양을 드나들며 북한당국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다.

해커 박사는 11월 9~13일 방북 중에 북한이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밝히면서, 이제 막 짓기 시작했기 때문에 완공에 몇 년은 걸릴 것이라는 친절한 해석까지 덧붙였다.

11월 2~6일 영변을 방문한 프리처드 소장도 북한이 100MWe 규모의 실험용 경수로(신포에 건설중이던 1,000MWe 경수로의 1/10 규모)를 지을 예정이라는 건설책임자의 말을 전하면서, 영변단지 내 냉각탑이 있던 지역에 콘크리트를 붓고 철근을 세우는 기초공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보통 전기출력 100MWe 이하의 경수로를 중소형이라고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몇 곳에서 중소형 경수로가 가동되고 있다. 지리적인 여건과 전력 수요 등을 고려할 때, 대규모 경수로를 지어서 전력을 공급하는 것보다 중소형이 더 적합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원전인 1,000MWe 경수로는 대형에 해당된다. 원자력 분야에서는 선진화된 중소형 경수로를 개발해서 원전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매우 치열하며,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

2. 경수로에 대한 북한의 집요한 관심

북한이 경수로에 대한 관심과 의지를 표명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초 북핵문제가 공론화되었을 때, 북한당국은 영변의 5MWe 원자로를 주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평화적 목적의 시설이라고 주장했다.

흑연감속재를 사용하는 5MWe 원자로가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을 생산하기에 적합하고 영국도 이와 유사한 원자로를 이용해서 플루토늄을 만들었다는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 북한의 주장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통해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이후 북한은 5MWe 원자로를 계속 가동했고, 여기서 생산한 플루토늄으로 두 번의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현재도 수 십kg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북한은 김일성이 살아생전에 얘기한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소위 비핵화 유훈을 앞에 내세운 채, 겉으로는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을 한다면서 비밀리에 진행해 온 핵무기 개발을 은폐했다.

1994년에 체결된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북한이 영변의 핵활동을 동결하고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가로 함경도 신포에 1,000MWe 경수로 2기로 지어주기로 한 것은 핵개발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지 결코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한다는 북한의 선전을 믿어서가 아니었다.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공식 선언하기 전까지 김일성, 김정일을 포함한 북한의 어느 누구도 핵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당국이 핵보유 선언을 한 이후에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경수로 건설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도 제1항에서 평화적인 원자력 이용을 명시해야 한다는 북한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2010년에만도 경수로에 대한 북한당국의 언급이 여러 차례 있었다.

예를 들어, 3월 25일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우리에게는 외부에서 그 어떤 광풍이 불어와도 끄떡없는 자립적 민족경제의 튼튼한 토대가 굳건히 다져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010년대에는 주체철과 주체솜에 이어 머지않아 자체의 핵연료로 꽝꽝 돌아가는 경수로발전소가 우리의 대답으로 될 것이다.

그리고 4월 9일자 조선신보는 경수로를 거론하는 북한의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미국이 평화회담을 외면하고 제도압살을 추구하여도 조선은 핵억제력 강화의 기존로선을 유지하면서 자체의 힘으로 경제를 건설해 나갈 것이다.

2012년 구상의 맥락에서 볼 때, 비핵화중단에 관한 립장 표명이 상기시키는 또 다른 계획이 있다.

경수로건설을 위한 우라니움농축기술의 개발이다. 전력증산은 경제 부흥을 위한 중심 고리의 하나이며 조선은 작년 유엔안보리가 인공지구위성발사를 문제시한 직후에 이미 자체의 경수로발전소건설에 대하여 천명했었다.

조선의 핵무기는 녕변 핵시설에서 나온 플루토니움을 원료로 만든 것이다. 조선의 국산경수로건설은 종래의 비핵화협상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할 수 있다.

3. 북한의 경수로 건설 능력

북한 경제가 군수공업에 중점을 두면서 왜곡되었듯이, 북한의 원자력 산업 역시 평화적인 이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왜곡되어 있다.

핵무기 개발이라는 군사목적을 달성하는데 자원을 투자하다보니, 민수용 원자력 분야에서 북한의 능력은 매우 열악하다. 북한에게는 중소형 경수로를 지을 기술도 돈도 없다는 것이 과학기술자들의 일치된 견해이다.

영변의 흑연감속로와는 원리도 다르고 핵연료도 다르며, 중소형이라곤 해도 현재 시가로 5,000억 원(25~30MWe 규모의 경우)은 소요될 경수로를 북한이 자력으로 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영변 지역에서 진행한다는 경수로 건설 공정은 함경북도 신포의 경수로 건설 경험을 역으로 활용하는 소위, “리버스 엔지리어링”(Reverse Engineering)을 따를 가능성이 있다. 신포 경수로는 부지정리와 기반 콘크리트 타설 등 건설공정의 35% 정도를 마친 상태이다.

북한이 소련에서 들여온 미사일을 분해해서 자체적으로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을 개발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리버스 엔지리어링 방식으로 경수로 건설을 흉내 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수로의 핵심장비에는 접근한 적이 없고, 이런 장비를 자체 생산할 능력도 없다고 봐야 한다.

4. 경수로 건설 사실을 공개한 북한의 의도와 함의

그러면 북한이 이 시점에서 중소형 경수로 건설 사실을 해커 박사와 프리처드 소장을 통해 국제사회에 흘린 의도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 궁금해진다. 몇 가지 분석이 가능한 데, 우선 대내용으로 활용할가능성을 들 수 있다.

경수로 건설을 자력갱생과 주체의 과학기술 능력을 입증하는 도구로 삼고, 이를김정은의 치적으로 부각시키면서 권력승계를 공고히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소형 경수로 건설 메시지를 외국인을 통해 흘린 것을 보면 대외적인 의도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외적인 목적을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천안함 국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구를 모색하며 6자회담 참여 신호를 계속 보내는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경수로 카드는 북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서 현재의 경색국면을 대북지원 국면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함경북도 길주의 핵실험장 주변에서 포착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 역시 3차 핵실험을 준비한다는 신호를보내면서 현재의 경색국면을 탈피하기 위한 전술로 판단된다. 물론 3차 핵실험은 그 가능성이 항상 열려있는 북한의 전략적 카드이다.

둘째,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설사 6자회담이 재개되더라도 경수로 건설 권한은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는 향후 북핵폐기 협상에서 대북 경수로 건설이 매우 중요한 논점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즉 북한이 핵폐기의 일차적인 경제적 대가로 요구할 것이 경수로 건설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이점에 대해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주도했던 한?미?일 세 나라의 입장정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수로 제공 = 북한의 핵포기’라는 단순 등식이 성립하지는 않는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경수로 카드가 “땅 보상 노려 나무 많이 심는 격”이라는 일각의 해석은 북한의 핵보유 의지를 간과한 오판일 수 있다.

셋째, 소형 경수로 건설 카드가 대외적으로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북한이 작년부터 인정하기 시작한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파키스탄과의 비밀 거래를 통해서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들여왔다. 이는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북한의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외면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비판받은 대외정책이었다.

북한은 2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으로 유엔 안보리결의안 1874호가 채택되자 2009년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처음으로 시인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북한 외무성의 이 발표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를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졌던 공방과 남남갈등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제 북한으로선 그 존재를 시인한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계속유지하고 합리화해나갈 카드가 필요한 데, 중소형 경수로 건설이 바로 그 카드의 하나로 제시된 것이라고 판단된다.

더 큰 문제는 소형 경수로의 경우 대형에 비해 우라늄 농축도가 높은 핵연료를 사용한다는 사실이다.

통상 대형 경수로는 핵분열성이 강한 U235가 3~5% 농축된 핵연료를 사용하지만, 중소형의 경우에는 농축도가 15~20%로 높아진다.

보통 무기급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이며, 농축도가 높아질 수록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의 생산 능력도 커지게 된다.따라서 북한이 소형 경수로의 가동을 위해 농축도 15~20%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겠다고 나서는 경우 문제는 매우 심각해진다.

북핵폐기를 추진하는 우리에게 매우 큰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4월 9일자 조선신보가 “국산경수로건설은 종래의 비핵화협상에 새로운 요소를 추가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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