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는 그 사회 질서의 척도이다

원난영 / / 기사승인 : 2013-04-08 1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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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경찰서 경무계 경사 원난영
우리는 흔히 역사를 시간의 길에 비유하며, 그 길 위에서 벌어진 인간사로 그 사회의 지난 역사를 음미한다.
교통질서의 상징인 도로는 그 사회의 질서수준을 가름하는 척도라 해도 다름 아닌데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 행태를 보면 문득 우리나라 국민성의 단면을 보는 것 같이 쓸쓸해진다. 굳이 사회학이나 심리학의 학문적 도움이 없어도 운전을 하거나 교통현장을 지켜보면 국민대다수의 행동양식이 가감 없이 여실히 드러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전을 위해 법으로 정한 안전거리를 나만 지킨다면 갑자기 끼어드는 차로 인해 오히려 더 위험한 경우가 다반사이며 ‘대충 대충과 빨리빨리 병’은 일단 죽거나 다치기 전에는 아무리 강조해도 남의 얘기로 듣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신호 대기선에서는 마치 출발선의 육상주자처럼 공회전과 반클러치를 붙였다, 뗐다하며 안절부절을 못한다.
노란 불이 켜지고 파란 불이 온전히 켜졌을 때 출발하는 느림보는 이제 없다.
이와 함께 본인은 지혜라고 착각하는 얄팍한 기회주의적 행동은 잘 빠지는 차선에 붙는가 싶더니 다시 다른 차선으로 붙고 마치 랠리경주를 하는 듯하며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결정적인 속성은 그러다가 자기 앞에 끼어드는 차라도 있으면 요란한 경적과 헤드라이트를 번쩍거리며 도저히 용서 못할 자로 낙인을 찍는다.
그런데도 정작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우리 교통문화의 실상은 그런 천방지축인 차들 유리창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말들로 붙여져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양보와 여유’ ‘안전띠는 생명 띠’, ‘모두 내 탓이오’ ‘안전운전은 우리 모두의 행복’ 등 자기행동보단 한 없이 격조 높은 스티커들로 도배가 되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운전할 땐 보행자의 느린 걸음을 탓하고, 자신이 보행자가 되면 자동차의 안전운전불이행을 욕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만의 밤 풍경은 어떤가, 인권이 보장된다는 미국에서조차 음주운전자는 현장에서 체포되거나 사살까지 된다던데,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우리들의 왜곡된 인맥문화는 자기의 행위책임보다는 인맥에 호소하여 편의나 선처만을 기대한다.
우리나라 음주 운전자의 대부분이 판, 검사들의 친척이며 매번 딱 한잔만 먹은 재수 없고 억울한 사람이란 것을 매일 밤 호소한다.
문제는 운전자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벌이는 도로공사 덕분에 좁은 나라의 도로는 더 좁아지며 교통소통에 묘안이 없는데도 으레 돌아가겠거니 길을 막고 공사하는 측도 급한 게 하나도 안 보인다. 뜯고, 때우고, 다시 뜯는 도로를 보면 마치 우리 역사의 질곡과 격동기를 보는 착각까지 드는데. 도로가 부족한 일본에서는 차량통행이 드문 심야나 비수기를 택해 하거나 운전자를 위해 몇 일전부터 공사예고를 한다고 들었다.
도로는 운전자와 보행자 또는 경찰과 국민 모두가 만드는 질서의식과 국민성의 현장이며 우리나라를 처음 오는 외국인이 공항을 나와 제일 먼저 보는 곳이기도 하다.
도로는 단순한 길이기에 앞서 우리의 질서의식이 흐르고 양보와 신뢰, 그리고 책임이 아스콘처럼 깔린 국민의식의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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