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경궁을 지나는 율곡로. 현재 문화재를 훼손하며 만들어진 율곡로는 2009년 설계 작업을 시작으로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
[시민일보] 수도 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서울 종로구에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국보와 문화재가 산재해있다.
역사를 품고 있는 옛 건축물들이 많고, 그 건물들 사이에는 오랜 역사를 묵묵히 지켜봐온 길들이 이어져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만들어진 탑골공원은 1919년 3월1일 처음으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외친 3.1운동의 출발이다.
이곳에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팔각정을 중심으로 3.1운동 기념탑과 벽화, 손병희 선생 동상 등이 있다.
또한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2만1000부는 우리민족의 자존심과 주체성을 높이고 독립의 의지를 널리 알린 우리 민족의 보물로 현재 독립기념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시민일보>는 조선왕조 6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종로의 길을 걸으며 우리의 역사를 되새겨볼 수 있는 곳을 소개한다.
▲ 일본대사관 앞에있는 "소녀상"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상’은 과거의 아픔과 슬픔을 오늘날 후손에게 전하고 있다.
소녀상은 2011년 12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 집회를 기념하며 ‘평화비’라는 이름으로 탄생했다.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소녀의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주먹을 불끈 쥔 자세로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처음 소녀상의 모습은 의자에 앉아 다소곳하게 손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일본 외무성이 우리 정부에 소녀상 설치 중단을 요구하며 오히려 손녀상은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소녀상 아래에는 쪽진 머리의 할머니 그림자가 함께 새겨져 있다. 아직까지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할머니들이 두려움과 분노를 넘어 진심이 담긴 사과를 기다리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소녀상 주변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의식 있는 일본인들이 과거를 반성하기 위해 찾기도 하며, 최근에는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인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녀상을 찾아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과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식민지 청년의 슬픈 노래가 있는 윤동주문학관
후대의 노력으로 새롭게 태어난 공간도 있다. 2012년 7월 문을 연 ‘윤동주 문학관’이다. 종로구는 2009년부터 시인의 하숙집 뒷 편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조성하고 시 낭송회, 문학둘레길 걷기대회 등을 진행해 왔다.
‘윤동주 문학관'은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 윤동주 시인의 대학시절 하숙집이 지금의 종로구 세종마을(누상동)에 있었던 인연으로 건립되었다.
윤동주문학관은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프를 얻어 인왕산 자락에 버려져 있던 수도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 만든 것으로 ‘열린 우물’과 ‘닫힌 우물’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실을 꾸미고 시인의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장은 ▲시인체(제1전시실) ▲열린 우물(제2전시실) ▲닫힌 우물(제3전시실) ▲별뜨락(휴식공간) ▲시인의 언덕(산책로)로 구성돼 있다.
시인체에는 9개의 전시대에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한 사진자료와 친필원고 영인본이 전시되어있고 벽에는 그가 집필한 책들이 걸려 있다.
옆으로 이어지는 ‘열린 우물’은 가운데가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을 모티브로 만든 전시장이다.
이곳은 용도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만든 것으로 물탱크에 저장된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열린 우물’을 따라 걸어가면 거대한 철문으로 굳게 닫혀있는 ‘닫힌 우물’이 있다.
이곳 또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만든 곳으로,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을 주제로 담고 있다.
특히 닫힌 우물에선 시인이 생을 마감한 후쿠오카 형무소의 음침하고 눅눅한 느낌을 그대로 살린 공간으로 어두운 역사 속 젊은 청년시인의 안타까운 일생을 담은 동영상을 감상할 수있다.
또한 일본 유학을 앞두고 창씨개명을 하며 느낀 죄책감을 써내려간 ‘자화상’, 유학 중인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적은 ‘쉽게 쓰여진 시’등을 지은 민족 시인의 모습과 수도 가압장에서 슬픈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해주는 영혼의 가압장으로 다시 태어난 윤동주 문학관에는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언제든 시인의 작품과 일생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도 있다.
이외에도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별뜨락과, 문학관 뒤로 산길 굴곡을 따라 펼쳐진 ‘시인의 언덕’도 조성돼있다.
▲ 윤동주 시인을 기리며 만든 "윤동주 문학관"의 모습 |
▲ 근대 우체국의 출발, 우정국로
우정총국은 세계적으로 오래된 우체국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은 조선시대 최초로 근대식 우편행정 업무를 보던 우정총국(郵征總局, 우정국로 59)으로 조선시대 대표적 정치개혁운동인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으로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현재 체신기념관으로 사용 중인 이곳에는 우표와 우정국 사무직제 장정 등 역사적인 우편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정총국은 임진왜란 직후 16~17세기에 건축돼 국립병원 전의감으로 사용되거나 일본 사절단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1884년 4월22일 왕명으로 우정총국이 개설되고 같은해 11월18일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행정제도인 우정업무를 보는 우정총국으로 변모하게 됐다. 하지만 같은해 12월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인해 우정업무는 잠시 중단됐다.
구는 우정총국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현재 6차선 도로 중 2개 차선을 없애 인도를 확충하고 자전거길을 만들어 우정국로를 보행친화적인 거리로 만들 방침이다.
▲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 |
▲빌딩 숲 사이 이이 선생의 집터가 있는 율곡로
경복궁 옆 동십자각(세종로 1-58)에서 시작해 안국역사거리, 창경궁, 이화사거리를 거쳐 종로6가 흥인지문(동대문)까지 이어진 길 율곡로는 조선시대에는 없던 길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인 1931년 풍수지리상 좋은 기운이 흐르는 창경궁과 종묘를 사이를 끊어내기 위해 담장을 허물고 만든 것으로 훼손된 창경궁과 종묘 사이는 작은 육교 하나로 연결되었다.
현재 문화재를 훼손하며 만들어진 율곡로는 2009년 설계 작업을 시작으로 옛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구는 올해 완공을 목표로 돈화문삼거리에서 원남사거리까지 왕복 4차선의 도로를 왕복 6차선의 지하터널길로 재건설하고 허물어진 창경궁과 종묘사이를 연결·복원하기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이다.
▲ 한용운 선생의 손길이 남아 있는 만해당
북촌에 위치한 ‘만해당’(계동길92-3)에서는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명인 한용운 선생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한용운 선생의 호를 따서 이름 붙여진 '만해당'은 선생이 1916년부터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까지 3년여를 머물며 불교잡지 ‘유심’(惟心)을 발간하는 등 3.1운동을 준비했던 곳이다.
현재 한옥 체험살이 게스트하우스로 쓰이는 '만해당'은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와 문인으로 살아간 선생의 정신을 담은 특색 있는 프로그램들을 통해 역사와 문학이 어우러지는 장소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중 한명인 한용운 선생이 3.1운동을 준비했던 북촌 계동길92-3에 위치한 '만해당' |
김영종 구청장은 “독립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고, 후손에게 알리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이라며 “문화와 역사의 중심도시답게 독립운동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을 가꿔 역경을 이기고 독립을 이룬 선조들의 흔적들이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명소로 거듭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대우 기자 nice@simin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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