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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래 |
공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오랜 기간 지켜내야 할 자신의 청렴, 이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단어 역시도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에머슨(1803~1882, Emerson, Ralph Waldo)은 청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라고. 이 문장을 보면서 필자는 이렇게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과연 청렴이라는 것이 공직자에게만 중요시되고, 공직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어인가? 이상론적인 이야기지만, 청렴이라는 것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불변의 진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불변의 진리는 현재 사랑, 존경, 박애, 도덕 등의 많은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중 하나가 청렴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로 청렴이라 함은 공직자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그 정표가 되는 단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나라를 통솔하고 대표하는 대통령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지켜나가고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부패인식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00점 만점 중 55점으로 조사대상 177개국 중 46위에 머물렀으며,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54.3%가 공직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억제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인 것이다.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요즈음, 옛 향교나 서원 등을 찾아가보면 많이 심어져 있는 배롱나무는 100일간 꽃이 핀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이 나무는 청렴(淸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마 새하얀 꽃이 마치 순결함과 진실함, 곧 청렴함을 상징하기에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느덧 만연하게 핀 배롱나무 꽃처럼 우리 사회에도 새하얀 청렴이 만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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