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당한 것도 억울한데 내가 '피의자'라고?

정형진 / / 기사승인 : 2015-04-20 13: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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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부경찰서 수사과
▲ 정형진
경찰서 수사과에는 하루에도 몇 명이나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그 중에는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이 된 것 같다고 하며 신고를 하러 방문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이들은 엄연히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이다.

전자금융거래법 제49조 제4항 제2호에 따르면 ‘자신의 은행계좌와 전자식 카드 등 접근매체를 대여 받거나 대여한 행위를 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전에는 보이스피싱 일당들이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행위가 매우 단순했으며 통장을 대여해주면 돈을 지급하겠다고 하여 대포 통장을 모집했는데, 범행 이후 대포통장을 개설해주거나 대여해준 명의자들까지 엄격히 처벌을 하게 되면서 이제는 이러한 말에 넘어가 통장을 빌려주는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범죄수법이 날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대포통장을 모집하는 행위까지 진화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대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편법으로 대출을 해주겠다고 속여 통장이나 카드를 넘겨 받는다.

이러한 말에 속는 사람들은 대부분 급전이 필요하거나, 1금융권 등 은행에서 정상적으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인데 이렇듯 궁박한 사정에 있는 것을 이용하여 전화를 받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신용이 좋지 않아 대출이 불가능한데, 우리가 회사 돈으로 수시로 입금, 출금을 해서 신용거래 내역을 만든 다음에 통장도 돌려주고 대출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 그러니 통장이나 카드를 보내고 비밀번호를 잠시 알려달라.”

그렇다. 이러한 말에 속은 사람들이 보내주는 통장이나 카드로 이들은 보이스피싱 등 각종 범죄를 일으키고, 물론 약속한 대출은 진행되지 않고 어느 순간 연락이 끊겨버린다. 그리고 통장을 보내준 사람들은 사기를 당했다고 하며 경찰서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들은 스스로 대출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편법’으로 대출을 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통장과 카드를 보내주었다. 이런 궁박한 사정을 이용한 보이스 피싱 일당들을 일벌백계해야 마땅하지만, 내심 ‘편법’적인 방법에 기대 대출을 받으려고 한 사람들의 잘못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은 대부분 기존에 사용하던 통장보다는 새로운 계좌를 개설하여 보이스피싱 일당들에게 보내곤 했는데, 은행에서 어려개의 통장을 동시에 개설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질문이라도 했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정부와 금융기관이 합심해서 이러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홍보활동과 예방활동을 펼치며 온 국민의 경각심을 고취시켜 더 이상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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