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과 자존심

정찬민 /   / 기사승인 : 2016-11-20 17: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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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민 경기 용인시장
▲ 정찬민 용인시장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름을 통해 존재가 고유한 의미를 갖게 되는 눈부신 변화의 과정을 ‘개화’에 비유해 표현했다. 그 어떤 철학자도, 그 어떤 언어학자도 해내지 못한 ‘이름’의 의미를 웅변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이름 짓기’다. 대부분 소망과 복을 담은 이름을 지어 부르며 아이의 행복을 기원한다. ‘이름 짓기’는 이름이 아이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부모가 미리 기획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름이 아이의 정체성을 만들어 어느 누구와도 다른 주체적인 고유의 삶을 살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붙이는 지명(地名) 또한 마찬가지다. 한 도시의 이름은 그 지역만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지역의 이미지를 만들고 다른 곳과 구별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용인 지명은 600여년 전에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용인시에 용인 지명이 적절히 사용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취임 후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 중 하나가 용인 고유 지명을 찾기다. 지역의 고유 명칭을 회복하는 것은 도시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68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 수원IC의 명칭이다. IC가 용인 땅에 있는데도 40여년 동안 다른 시의 이름으로 불렸던 것이다. 이전 시장들도 수차례에 걸쳐 이름 변경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불가” 통보였다. 이유는 수십년간 써온 이름을 바꾸면 이용객들에게 큰 혼란을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집요한 설득 끝에 지난해 1월 수원신갈IC로 명칭변경을 이뤄냈다. 용인시가 첫 민원을 넣은 지 16년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상하동 용인효자병원~구갈레스피아간 수원천의 명칭변경도 중요한 성과다. 하천은 용인시 관내에서 흐르고 있는데 이름은 오랫동안 수원천으로 불리워져 시민생활에서나 행정적으로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경기도를 끈질기게 설득해 지난 8월 ‘수원천’에서 ‘상하천’으로 이름을 바꿨다. 경기도에서 하천 이름이 바뀐 것은 상하천이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달에는 지역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는 ‘정신병원 고개’ 명칭도 45년만에 ‘효자고개’로 변경했다. 지난 1971년 고개 중간에 정신병원이 생기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었으나, 용인시의 이미지를 저해한다는 판단에 따라 시 고유지명 찾기 일환으로 명칭 변경을 추진한 것이다. 2014년에는 용인지역에서 생산되는 쌀·포도·복숭아·오이·상추·청경채 등 농산물에도 용인 지명을 브랜드명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름을 통해서 전통과 역사는 보존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대가 만들어진다. 600여년 전에 문헌에 처음 등장한 ‘용인’이라는 이름은 지금도 변치 않고 시민과 함께 하고 있다. 앞으로도 영원히 한결같이 사용될 것이다. 곳곳에 널려 있는 지명에 용인 고유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100만 대도시에 걸맞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기도 하다. ‘용인’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때 자존심을 되찾는 행복한 변화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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