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고이지메 된 까닭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06-20 19: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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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진 화 국회의원 {ILINK:1} 지난 11일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 후 오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관계와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설명하자 부시 대통령은 “나는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노 대통령 얘기를) 다 알아듣겠는데, 고이즈미 총리는 왜 잘 못 알아 듣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고이즈미 총리가 배운 역사책과 내가 배운 역사책의 내용이 다른 모양이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최근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이 “일본의 UN 상임이사국 진출은 아직 이르다”라고 한 것은 일본이 주변국과 선린관계를 우선적으로 회복하라는 우회적인 압력이다. 일본이 가장 신뢰하는 우방이 미국이지만 미국마저도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일본 내에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를 후원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일본유족회’는 최근 신문의 지면을 빌어 “총리가 2차대전 전몰장병을 추모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지만 A급 전범에게도 참배를 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며 “총리의 참배가 주변국과의 평화를 해치고 있으며 야스쿠니에 있는 전몰장병들이 기뻐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비판을 실었다.

또한 우파로 알려진 나카소네 전 총리마저도 지난 13일자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올해 고이즈미 총리에게 신사참배를 피하도록 촉구하였다”며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 공식방문을 끝내야 한다”고 고이즈미 총리를 비판했다.

일본 내 언론도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 16일 고이즈미 총리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해서는 안 된다”며 신사참배를 정당화하자 아사히 신문은 “고이즈미 총리의 발언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용서할 때 쓰는 말”이라며 “총리로써 사려깊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일본 국내의 상황이 급변한 것은 고이즈미의 외교전략이 일본 국익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신했던 UN상임 이사국 진출이 좌절되고, 중국에서 지난 4월 한달간 대규모 전국적 반일시위가 발생하여 재중 일본인이 폭행당하고 일본상품 불매운동이 아직도 지속중이다. 한국에서도 도요타 차량 판매량이 작년 12월에는 596대를 기록했으나 야스쿠니 신사참배 이후 296대로 급감하였다.

특히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마저 지난 17일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일본의 점령을 경험한 나라들에게 나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싱가포르의 최고 지도자가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이렇게 명확하게 비판한 것은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는 스스로 자초한 행동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렸고, 국내의 평화애호세력으로부터 ‘최고 왕따인 고이지메’가 된 것이다. 이제 일본 내에서도, 미국, 동아시아 주변국으로부터도 이지메를 당하고 있는 고이즈미 총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철저히 봉쇄된 셈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현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번 한일정상회담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즉각 중단하고, 독도 영유권 주장 및 교과서 왜곡에 대해 책임있는 대책을 내 놓는 방법밖에 없다.

20일에 개최될 한일정상회담은 독도 및 EEZ문제,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해 논의가 될 예정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 쟁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이다. 올해는 광복 60년을 맞이하여 한일 친선의 해로 지정되었지만 신년 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로 인해 원래의 취지는 완전히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이미 지난 2001년, 고이즈미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태평양 전쟁 A급 전범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분사하는 제3의 추도시설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제3의 추도시설 건립은 시작조차 되지 않고 있으며 주변국들에게 보란 듯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 하고 있다.

나는 일본 시마네현에서 독도의 날을 제정하였을 때 고이즈미 총리에게 질의서를 보냈었다. 이 질의서에는 ▲독도(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 ▲야스쿠니 신사참배 중단 ▲태평양전쟁 희생자 보상, ▲일본군 성노예(위안부)피해자 문제 ▲사할린 강제징용자 문제 ▲조선인 원폭 피해자 문제 ▲대마도 문제 ▲우경화를 초래할 수 있는 일본의 헌법개정(유사3법 포함) ▲태평양전쟁(아시아민중에 대한 침략)에 대한 책임있는 사과 등 10개 현안이 명시 되어 있으며 총리의 조속한 답변을 요구하였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질의서에 적시된 10개 사안에 대해 직접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며 아울러 한국 정부도 이러한 10가지 사안에 대해 일본 정부의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일본이 동북아시아에서 평화를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이웃이 될 수 있도록 협상에 임해야 한다. 또한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단하고 한일 양국의 미래를 논의할 것인지, 아니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속하면서 스스로의 고립을 자초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으며 일본 스스로 전향적 자세를 갖추기를 기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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