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선생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이정우 교수는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구를, 박세일 교수는 국가능력을 화두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 교수를 가운데 두고 최 선생이 左에 박세일 교수가 右에 선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름다울 수도 있는 이 시대의 한 장면입니다.
문제는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냐 하는 겁니다. 우리 시대가 처한 최대의 난제는 사회적 양극화입니다. 저 역시 자주 말씀드려온 문제의식입니다. 그런데 사회적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과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박 교수의 주장처럼 국가 능력의 부족일까요? 최 선생 말씀처럼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참여정부의 전략 부재 때문일까요? 국가 능력의 문제라면 능력 없는 현 정권이 하루 빨리 물러나고 능력 있는 새 정권이 들어서는 게 해법일 겁니다. 전략 부재의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정권이 사회경제적 정책과제에 집중하면서 노동측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대안일 것입니다.
세 분의 토론은 한국 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아름다울 정도로 논리 정연하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미나장 안에서만 그러합니다. 여기 여의도에만 들어오면 사정은 완연히 달라집니다.
박세일 교수는 6개월 전만 해도 한나라당의 정책위원장이었습니다. 창당 이래 최초로 당의 이념적 노선을 ‘공동체 자유주의’로 정식화하고 그에 따른 정책적 각론을 알뜰히 준비하셨던 분입니다. 당 해체를 통한 재창당을 구상할 정도로 당 내부 혁신을 주창하던 그 분은 그러나 정작 자신의 뱃지를 내놓고 당을 떠났습니다. 당의 정강정책 어디에도 그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당 쇄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혁신위원회’ 조차 불임증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신 한나라당은 4.30 재보선 대승 이후 완전히 옛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념은 전통적 반공주의와 보수주의로 후퇴하고, 정책은 정부여당의 그것에 반대하는 방향으로만 맞춰지고, 대화와 협상에선 도무지 양보와 타협을 모릅니다. 이것이 정치 현실입니다. 노선과 정책 중심의 정당? 극한투쟁이 아니라 상호 인정 하에 경쟁하는 국회? 아직 먼 얘기입니다.
왜 그럴까요? 강준만 교수는 지역주의 걱정을 또 다시 들먹이는 정부여당이 국민의 ‘이성’을 ‘모독’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최장집 선생은 ‘일종의 알리바이일 가능성’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강 교수님이나 최 선생님이 원하는, 진정으로 한국 사회의 갈등 및 균열요인과 정면 대결하는 정치가 되려면 이 한나라당과의 사이에 놓인 협곡을 먼저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가로지르는 지역주의적 균열의 양대 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권력 분점까지도 제안했던 것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아마 이 부분이 진보적 학자들의 비판을 불러들인 결정적 원인일 겁니다.
어차피 정치는 균열을 먹고 사는 겁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정치의 제1차적 균열은 여전히 지역입니다. 저는 현실정치판에서 숱한 선거를 치르면서 차마 입 밖에 꺼내 말 못할 숱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그 동네 표준 말씨가 다릅니다. 사람을 만나면 우선 그 분의 사투리부터 식별해내려고 애쓰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 깜짝 깜짝 놀라는 것도 이제 옛날 얘기입니다. 수도권에서만 출마한 저나 그렇지 지방에서 선거 치르시는 분들은 그럴 필요가 없겠지요. 어디 가서는 무조건 누구 욕만 하면 좋다고 하고, 어디 가서는 누구만 유세장에 불러오면 자기까지 덩달아 인기 올라가는데, 얼마나 간단하겠습니까?
여하튼 저는 앞으로 연정론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 자신 있게 예언하거나 분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연정이냐 소연정이냐 그것도 민주당과냐, 민노당과냐에 따라 모두 그 정치적 함의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 어느 것이 우리 정치현실에서 필요하고 발전적인 것인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마 사회경제적 의제에 좀 더 천착함으로써 경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한 걸음 진보해야 한다고 믿는 분들에게는 민노당과의 연정이 그 중 바람직할 것이고, 결국 개혁연합이 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의 진솔한 사과의 선행 하에 민주당과의 연정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연정 제안의 진정한 동기를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한나라당과의 공존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제도적 틀의 구축이 목적이고 그러기 위해 전술적 연대가 불가피하다는 데 핵심이 있다는 점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에게 실질적 권력 행사를 통한 이점을 취하게 하는 대신 상생의 정치문화를 확보하고 거기서 다시 정당득표율 중심의 의석 배분이라는 제도적 결실을 맺음으로써 차기 선거부터는 정책 경쟁이 가능한 정치 지형을 창출하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다고 하는 사실 역시 진보진영이 짚어 주었으면 합니다.
물론 비판 역시 다양한 각도에서 가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차고 넘치는 만큼 그로부터 얻어진 값비싼 학습 효과를 저희들이 헛되이 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좀 더 단순하고 투박할수록 좋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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