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성장의 그늘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12-25 19: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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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ILINK:1} 지난 17일 토요일,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추위가 엄습한 아침이었다. 동네의 열댓분 지인들과 함께 한강 건너 아차산 산행을 하려고 아침 7시30분 집결지에 모였다.
산행을 시작해서 경사가 급한 초입을 오르고 조금은 평탄한 등성이를 걸어갈 때도 말을 꺼내는 일행은 없었다. 40여분이 지나 그날의 산행 목표지점인 아차산성 옛 고구려군의 군영지에 이르러 5분여의 휴식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김재선형이 입을 열었다.
“황우석 교수 파동이 연말에 터졌기에 망정이지 내년초에 터졌더라면 내년 한해 내내 온 국민의 넋을 빼고 기운이 빠지게 되었을 겁니다.
일주일만에 만나면 반갑고 즐거워하던 이들이 인사도 별로 나누지 않고 침울해하던 이유가 바로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진위 파동이 벌어지면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우리 과학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고 머지않아 노벨상을 틀림없이 타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일반 국민들이 그러할진대, 난치병, 불치병에 신음하면서 황 교수팀의 일거수일투족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었을 환자들의 낙담이 어떠했을까. 우리의 생명과학 수준이 말그대로 세계 최고 수준임이 입증됨으로써 한껏 자긍심이 부풀어 있던 과학자들의 자존심의 상처와 세계 학계의 불신으로 빚어질 후유증은 얼마나 심각할 것인가. 신 성장동력산업으로서 각광을 받게 된 생명공학 분야가 세계 과학계의 선두주자로서 IT산업 분야나 마찬가지로 우리 미래의 효자산업으로 기여해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을 정책당국자들의 당혹감은 어떠했을까.
우리 과학자들 일부는 황 교수의 허상이 드러난 지난 15일을 한국 과학의 국치일(國恥日)이라고 규정한 반면에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젊은 과학자들은 오히려 한국과학계의 진실을 향한 노력과 자정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 과학의 미래는 밝다고 전망했다.
앞으로 조사가 진행되면 지금까지의 혼선과 무절제한 폭로가 정리되고 경위의 전말과 책임소재가 분명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언론측에게도 조사결과가 나올 때가지 차분히 기다려보자고 국민들 쪽에서 요구해야 될 것 같다.
이번 파동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자꾸만 거울 속의 우리 얼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었다.
지난 40년 동안에 우리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압축성장을 이뤘다.
남들이 200~300년 걸려 이뤄낸 일을 40년만에 이루어 내자니 거기에 어찌 무리가 없겠는가. 우리는 학교를 다닐 때에도, 사회생활의 어느 분야에서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들이 있다. “빨리 빨리 해라”, “대충 대충 적당히 해라” 그런 말들이다.
결과가 좋으면 절차와 방법이 아무리 부당한 것이어도 정당화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 나라가 달라지고 있다. 일단 성공만 하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게 되고 난치병,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의 등대가 되고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서 21세기에 우리 국민을 먹여살릴 수 있는 확실한 가능성이 있고 당장 관련 주식값이 치솟아 큰 돈을 벌 수 있는 등 ‘빨리 빨리’ 성공해서 ‘대충 대충 적당히’ 넘어가기만 하면 우리 국가 사회에 큰 소득과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아니다” 하고 막아선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선진화’라는 말이 유행한다. 2만달러 소득의 사회에 이르는 것이 선진화의 목표인 것으로 풀이되기도 한다. 허나 2만달러 소득이 성취되지 않은 사회에서도 ‘’천천히’ 그리고 ‘차근 차근’이 사회의식의 관행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래야 정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파동은 우리 사회의 성숙화, 선진화로 가는 이정표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한 가지 남는 염려는 있다. 다른 여러분들도 지적하는 바이지만, 황 교수팀이 현재까지 성취한 그 분야의 기술 수준은 그 과정과 방법상의 과오와 과장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의 경지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책임을 가리는 동시에 과오는 인정하고 시정하되 연구 성과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것도 조사 이후에 반드시 취해야할 조치다.
연못 물 위로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연꽃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 올리느라고 얼마나 갖가지 자양분이 연뿌리를 통해 흘러들었을까. 그 연꽃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우뚱 기우리고 물 속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오늘이 있도록 자양분이 되어주고 제물이 되어준 수많은 ‘지난날의 자신’을 바라보면서 감사하고 기도하며 서있다.
오늘의 우리의 삶을 연꽃이 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듯이 돌아볼 수 있다면, 자신을 피워 올린 것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연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을 ‘미래의 자신’을 위해 바칠 준비를 한다면, ‘빨리 빨리’, ‘대충 대충 적당히’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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