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을 바로 짚자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01-24 18:2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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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열린우리당 의원) {ILINK:1} 얼마전 열린 대통령의 신년 연설을 보면서 ‘아, 또 증세 논쟁이 불 붙겠구나’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대부분의 신문이 증세 문제를 다루었고 특히 전당대회에 출마한 각 후보자들의 입장이 실렸더군요. 저도 질문을 받고 간단하게 대답하면서 속으로는 ‘이게 아닌데….’ 했습니다.
대통령의 신년 연설에 대해 ‘사회적 양극화 문제의 대책으로 사회복지정책을 펼치기 위해 정부가 재원 확충을 꾀한다더라, 그런 즉 국민들이 장차 내야 할 세금이 오를지도 모르겠다’ 하는 식의 해석은 이해하기 쉬우라고 한 건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면 답이 오도될 수 있습니다.
지금 문제는 ‘증세냐? 감세냐?’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렇게 설정해버리면 답은 무조건 감세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약탈국가론(Predatory State)’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모든 통치자는 세입 극대 추구자(Revenue Maximizer)이기 때문에 세금을 많이 걷으면 걷을수록 통치자의 권능은 강해지고이 강화된 권능으로 각종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면 지지 기반 역시 강화된다는 그런 이론입니다. 아마 야당은 이런 식으로 정부를 공격할 겁니다. 너희들은 국민의 혈세를 빨아 먹는 약탈자다….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그게 아니라 제대로 된 문제 설정은 ‘과연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계속 먹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국가(발전)전략을 선택할 것인가?’하는 겁니다. 소위 박정희식 성장모델이라는 게 한때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경제 발전 전략입니다. ‘수출 입국, 국가의 시장 개입, 민주주의의 희생’이 모델의 3대축입니다. 그런데 이게 1997년 IMF 사태를 계기로 더 이상 작동 불능하다는 게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밀려들어온 게 소위 세계화이고 신자유주의입니다.
수출은 여전히 중요한 국부 창출 기제이지만, 더 이상 저임금과 재벌 특혜적 경제정책으로 지원될 수 없어졌고 국가의 시장 개입은 탈규제화 바람과 함께 죄악시 되었으며, 권위주의 정권의 몰락과 함께 민주주의는 이미 공고화 단계로 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이러한 상태에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박정희 모델을 폐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걸 대체할 새로운 모델은 여전히 없습니다. 그 빈 자리를 밀고 들어 온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입니다. 이건 우리가 원한 것도 만든 것도 아닙니다. 반면에 그 폐해는 엄청납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양극화입니다. 20대 80의 사회입니다. 인구의 20%가 80%의 부를 갖고 나머지 20%를 인구의 80%가 나누어 가지는 사회, 만성적 실업과 고용 불안이 구조화되는 사회, 한 마디로 ‘준공황상태’입니다.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어떤 새롭고 독창적인 국가 발전 전략을 새로 모색하는 길. 아니면 미국 주도의 국제 경제 질서에 편입돼 신자유주의적 발전 전략을 채택하는 길. 이 두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후자의 길로 강제 당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통령의 신년 화두가 이 길을 조금씩 수정하려는 노력입니다. ‘신자유주의에 무조건 따라갈 수는 없다. 아무리 추세가 그렇더라도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이대로 방치하고는 우리 중 누구도 미래는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비친 것입니다.
따라서 반대를 하려면 온전히 신자유주의적 발전 전략 그 자체에 완전 통합되어 가자는 후자의 길을 주장하든가, 아니면 전자의 새로운 국가 발전 전략을 개발해 제시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한나라당이 후자의 입장이고 민주노동당이 전자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본질인 국가 전략에 대해서는 두루뭉수리한 채 애질러 증세 논쟁으로만 몰고 가는 것은 비겁한 태도입니다.
요컨대 이 시대 모든 정치인에게 던져질 질문은 당신이 생각하는 한국 국가의 발전 전략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지 증세냐, 감세냐 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그 점은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증세를 하더라도 국가 재정을 확충해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국가전략의 폐해를 줄이겠다는 생각도 진전이긴 하지만 캐나다의 멀로니 수상만 역사 앞에 책임지는 방법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래도 우리에게 가능한 국가 발전 전략은 없겠는지 더 깊이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한나라당처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이분화해 선거에 이용하기 위한 음모’ 운운하는 수준 떨어지는 얘기는 그냥 웃고 넘기면 되고, 민주노동당도 신자유주의 비판만 하지 말고 진짜 진보진영의 국가 발전 전략은 무엇인지 내놓았으면 합니다.
참여정부를 넘어서고자 하는 모든 정치인은 이제 결코 간단치 않은 화두를 연초부터 안은 셈입니다. 깊이 있는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으면 합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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