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가 끝났습니다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8-07-03 18:3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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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책 변호사 시청 앞 광장에 때 아닌 미사가 열리고 있다.


'국민 존엄을 선언하고 교만한 대통령의 회개를 촉구하는 비상시국회의 및 미사'라는 긴 이름의 현수막이 나붙었다.


문자 그대로 '미사'이지만 그 곳에는 '말씀'이나 '성찬'이 없다.


흰 옷을 차려 입은 신부들은 하나님에게 바칠 빵과 포도주 대신 '고시 철회, 명박 퇴진'이라는 구호가 선명히 인쇄된 피켓을 들었다. 성가 대신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성체(聖體)의 제의(祭儀)에 넘쳐야 할 엄숙함도 경건함도 그 곳엔 없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벌인 이 미사를 두고 진보좌파 신문은 '현대사에 남을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거리를 점령하고 폭력으로 치닫던 촛불 시위의 기세가 꺾일 때, 느닷없이 신부들이 나섰다.


평화적인 시위를 위해서라며 그들은 성전(聖殿)의 문을 열고 나와 광장에 천막을 쳤다.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제단'에게는 그 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존엄한 '국민'이고 그 반대편에 고요히 서 있는 사람들은 사탄이거나 마귀들인가. 그렇지 않다면 '사제단'이 감히 복음에서 빌려온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는 말씀은 성서에 대한 명백한 모욕이 될 것이다.


'사제단'이 '정치'에 뛰어든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1987년 대선 직후 김대중 후보의 주장에 맞춰 컴퓨터부정선거를 외쳤을 때부터 '사제단'은 진보좌파와 호흡을 함께 해왔다.


그들은 내 기억으로는 단 한 차례도 김정일 체제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았으며 고통 받고 있는 북한 주민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캄캄하고 캄캄한 진짜 '어둠'에 대해서는 촛불을 들지 않았고 기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사제단'이 다시 '정치'를 하고 있다.


쇠고기 재협상을 선언하고 국민에게 항복할 때까지 평화적인 미사와 폭력이 없는 시위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광장의 민중이 승리하는 그날까지, 지금부터 '사제단'이 시위를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그건 선거에서 뽑힌 지 반 년밖에 되지 않은 대통령이 더 이상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충고도 아니요, 나라를 위한 기도도 아니다. 그들이 촉구하는 대통령의 '회개'는 다름 아닌 대통령의 '무력화(無力化)'이거나, 하야다. 그들이 한다는 '평화시위'는 결국, 종교를 앞세워서 진압을 막는 시위 전략에 불과하다.


나는 차라리 '현대사에 남을 오욕의 정치 간섭'이라고 쓰겠다.


지금이 어디 종교가 개입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어 헌법이 파괴되고 독재가 자행되는 시대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사제단'이 구현하는 정의는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 다수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진실'인가. 다수를 위한 것이라면, 추가협상이 된 지금 '더 이상의 촛불'에 반대하고 있는 말없는 다수는 사제단에게는 '어리석은 종'에 불과한가. '사제단의 정의가 '진실'이라면 그 진실은 누가 판결하는 것인가.


'사제단' 신부는 국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대통령이 억누르려고만 한다면서 그 상처와 분노를 대통령이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마 그 신부가 말하는 국민들이란, 처음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어린 여중생들이나 뒤이어 모여들었던 시민들이 아니고, 끝까지 남아 경찰버스를 끌어내고 청와대로 행진하려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대부분의 시민들이 촛불을 끄고 돌아간 이 시점에 굳이 신부들이 성전을 버려야 할 이유가 없다.


더 나아가 '사제단'이 '민중'의 주장을 똑같이 반복하고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중세의 가톨릭처럼 국가 정책수립과 집행에 종교가 직접 개입하는, 본분을 넘는 행위이다.


정치가 종교에 개입해서 안 되는 것과 같이,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히 야만적이다.


나는 '사제단' 신부들이 주장하는 '국민 존엄'을 위해서라도 '사제단'의 존엄을 보고 싶다.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성전에서 고통 받는 대중들을 위해 기도하고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聖職)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희생한 정신이 부활하여, 그들의 정신이 예수와 일치되고 나아가 이 세상에 널린 진짜 어둠을 걷는 촛불을 밝혀 들길 원한다.


그래서 감히 말하겠다.


이테 미사 에스트.(미사가 끝났습니다. Ite missa est) 돌아가 주의 복음을 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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