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 대통령을 이리 궁지에 몰고 있나. 이 대통령 쪽은 진보좌파들이 대통령과 여당의 발목을 붙잡는다고 한다. 이 말은 일리 있다. 지난해 소고기파동 폭력시위 현장에 야당의원이 있었다. 시위를 진두지휘한 ‘대책회의’는 명분만 시민단체이지 진보좌파 활동으로 일관한 이름들로 채워졌다. 야당이 집권했을 때 발의했던 법들이 한나라당이 다시 발의하자 느닷없이 ‘악법’이 되고, 자신들이 그렇게 증오하는 전두환 정권 때의 언론통폐합으로 만들어진 ‘다공영체제’를 민영체제로 바꾸려는 ‘미디어관련법’은 언론장악의 의도로 내몰렸다. 웃기는 것은 이 대통령이 가장 하고 싶은 두 가지 - 한반도운하와 한미FTA - 중의 하나인 한미FTA의 발목을 잡는 야당의 태도이다. 졸속협상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자신들이 밀어붙였던 FTA의 상정을 막기 위해 해머까지 동원한 야당은, 솔직히 말해 억지 부린 한나라당보다 더 가관이다. 야당의 이런 모습은 어떻게 하든지 이명박정부를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의 표출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 지금 이 난장판이 전부 야당의 책임인가. 이 위기는 이 대통령의 잘못에 기인했다기보다 반대파들이 만들어낸 것인가. 경제위기는 그저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이고, 촛불시위 난장판은 편파방송과 좌파들의 준동 때문이고, 용산참사를 강경 진압한 경찰은 흠이 없었다는 것인가. 지금 국민들이 등 돌리고 귀 막고 있는 것이 그저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소통부족 때문이며 따라서 진실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인가. 한나라당 의원 중에도 그렇다고 답할 간 큰 위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난장판의 진짜 원인은 이 대통령이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 문민대통령들 모두 그랬다. 아무런 국가적 비전도 없다는 것은 문민시대의 비극이자 국민적 불행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하나회척결로 문민우위시대를 열고 금융실명제로 부패의 원천을 없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없애고 상향식 민주주의를 실현하려 한 노력은 그 자체만으로 상찬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국가적 비전은 아니다. 오히려 문민정부 통틀어 부패와 비효율은 엄청났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는 5년 단임을 너무 의식한 때문이다. 5년 동안에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강박심으로 인해 장기적인 국가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제외되었다. 5년간의 한정된 시간은 자신을 도와준 수많은 충복들에게 골고루 보답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니 인사의 폭이 넓어질 수가 없었다. 좁아진 정책과 인사의 한계가 문민대통령들을 망하게 한 원인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 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했다. 5년 안에 업적을 남기겠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멀리 내다보아야 했다.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만들고, 캠프로 몰려든 재사(才士)보다는 널리 인재를 구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게 정책은 한반도운하와 한미FTA 둘밖에 없었다. 747이니 국민성공시대니 경제살리기니 하는 구호는 오랜 CEO 경험과 서울시장 때의 청계천복원사업에서 나온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지만, 친기업정책과 규제철폐 등 큰 틀 외엔 그 세부적인 정책이 없었다. 중소기업을 살리고 일자리를 몇십만 개 만든다는 립서비스만 난무했다. 거기에다 녹색성장이라는 어젠다는 노무현 정권의 산자부가 내놓은 정책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더욱이 한반도운하는 출발부터 잘못된 프로젝트였다. 동남권신공항 제주신공항 동서고속도로 등 지방을 살리고 일자리를 늘릴 국가적 장기 프로젝트가 산적해 있는데도 이 대통령은 운하라는 전근대적 개발사고(思考)에 처음부터 매몰되어 있었다. 이건 ‘청계천’이 장기적으로는 실패한 프로젝트라는 것을 제대로 지적해 주지 않은 데 따른 이 대통령의 환상 때문이다. 도로율 낮은 서울에서 사천(死川)이 되어버린 청계천을 복원하느니 문화재만 살리고 도로로 써야 함에도, 전기로 물을 끌어댄 것은 명백한 전시행정이었다. 그런 전시보다 더 급한 것이 서울의 교통이고 ‘청계로’라는 도로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냄새나고 어두웠던 청계천에 물이 흐르는 것만으로 환호했다. 이런 환호가 이 대통령을 운하에 집착하게 만든 것이다. 운하를 만들어 청계천처럼 두고두고 칭송받고 싶다는 욕망은, 운하가 물류나 관광사업이 아닌 것은 물론 환경에도 회복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는 지적에 눈감게 만들었다.
한미FTA 비준동의를 서둔 것 역시 FTA가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다. 이 대통령은 인수위 때부터 FTA에 올인 했고 그 때문에 노무현정권이 떠넘긴 소고기문제의 휘발성을 몰랐다. 결국 소고기 졸속협상은 반대세력에게 제대로 빌미를 주었다. 문제는 소고기 문제로 나라가 엉망이 되었을 때 이명박정부의 대처였다. 대통령부터 국민들을 설득하고 돌파구를 찾으려는 용기를 내지 않고 광화문에 컨테이너로 성을 쌓는 치졸한 방법을 썼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또 하나의 한계인 인사 문제는 되풀이되는 문민정부의 재앙이다. 과거 정권에도 회전문 인사(人事) 측근인사 낙하산인사가 있었다. 그러나 출발부터 이처럼 철저히 대통령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한 인사는 없었다. 대통령과 같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인수위원장 발탁사유가 되고, 같은 학교 같은 지역 혹은 서울시장 때의 인연이 중용의 근거가 된다면 이 대통령 스스로 국가운영을 우습게 본 것이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이 그런 사람으로 채워졌다는 것은, 대통령에게 반대할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단적인 예가 ‘아륀지’로 회자되는 영어공교육 정책이다. 국가백년대계를 위해 국어와 역사 철학을 가르치도록 커리큘럼을 바꿔야 할 때 대통령부터 영어공교육 확대정책을 들고 나왔다. 커리큘럼을 바꾸는 일은 입시제도와 달리 5년 안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 일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모국어와 민족혼을 잃게 하는 일인데도 사교육 열풍의 원흉인 영어를 공교육을 확대하여 해결한다는 발상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권 내부에서 그 어떤 반대도 없었다.
결국 이명박정부가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것은 이념에 바탕을 둔 정책이 없었다는 것과 능력보다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사람을 쓴 무모한 인사로 인한 것이다. 청계천의 환상만 있었지 대통령으로서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거기에다 말씀이 절제되지 않은 이 대통령의 기질도 단점으로 작용했다. 기업체의 리더일 때 진두지휘하며 하는 여러 말들은 때로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대통령의 말씀은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국가정책방향과 직결된다는 점을 이대통령은 너무 늦게 체득한 것이다.
이 대통령에게 치명적 결함은 이념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과 국가를 구별 못 하는 CEO적 사고는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능률과 성과만을 요구하고 과정은 철저히 무시된다. 무언가 결과를 도출해내야 한다는 압력은 공무원사회를 경직되게 만든다. 보수도 진보도 아닌, 좌도 우도 아닌, 단지 실용만이 강조되는 정부는 결코 중도정부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보수의 옷을 입고 시세에 따라서 진보의 기치를 드는 기회주의적 정부인 것이다.
그 때문에 이명박정부는 처음부터 작고 효율적인 정부가 되지 못했다. 방만한 공무원 조직을 정비할 기회였던 정부조직통폐합을 하면서 이대통령은 여성부와 통일부를 없애지도 못했고 수많은 위원회들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했다. 솔직히 말해 이 나라에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조직이 중앙부처부터 기초의회까지 어디 한두 군데인가. 이 대통령은 그 부조리를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협을 택했다. 보수의 이념이 없으니 굳이 작은 정부를 택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다잡지 못한 대통령의 이런 느슨함이 공무원조직에 새 기운이 싹틀 여지를 없앤 것이다.
한미연합사해체는 진행 중이고 자주국방에 대한 재원 마련은 요원한데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재협상은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연합사가 해체되는 2012년에는 퇴임할 것이고 연합사해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임질 일이라는 것인가. 북한 핵에 대해서는 미국의 처분에 맡기고 있는, 참으로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런 일들이 한미관계회복이니 동맹 강화니 하는 듣기 좋은 말로 포장되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지난 총선 때 한나라당의 공천과정은 도저히 민주정당의 공천과정으로 볼 수 없는 밀실의 흥정이었다. 우리 정당이 다 그렇지만 한나라당이 무엇이 부족하여 상향식 민주주의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것일까. 그건 아직도 정책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조직과 야합으로 권력을 쟁취하는 일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나눠먹고 미운 털이 박힌 자를 제거하는 일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탓에 한나라당은 보수인사들의 정당도 아니오, 테크노크라트의 정당도 아닌 어정쩡한 정당이 되어버렸다. 공천부터 이러니 한나라당에 무슨 원칙이 있겠는가. 결국은 친박연대라는 이상한 이름의 정당이 나오고, 도저히 집권여당이라고 할 수 없는 친이 친박의 반목만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이 대통령에겐 앞으로 1년은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에게 가장 힘 있는 1년을 허송한 지금, 올 한 해는 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느냐 전임자들처럼 실패하느냐를 결정하는 마지막 기회다. 만약 이 일년 마저 낭비한다면 이 대통령의 남은 3년은 야당과 차기 주자들의 공격에 시달리는 참으로 피곤한 시간이 된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는 오히려 이 대통령에게는 기회이다. 처음 잘못 짚었던 고환률 정책은 지금까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그 한편으로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우리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인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위기는 또 구조조정의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 경제가 여기서 침몰하지 않고 살아난다면 이번의 경제위기는 우리가 G20을 넘어 G7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이 통합의 리더십이다. 반대파들이 발목을 잡는다고 투정부릴 일이 아니라 반대파들을 동반자로 대우하는 포용력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대통령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장관과 참모들이 대오 각성한들 느닷없이 신뢰가 쌓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많은 이들이 대대적인 인사 혁신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전임 경제팀과 기조를 같이 하는 장관이 임명되고 국가안보에 전혀 경험 없는 이가 정보부 수장으로 고속 출세하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가장 크게 훼손한 문화부 장관은 충성심을 높이 사 살아남고 한미연합사 해체에 앞장 선 분이 여전히 안보장관 자리에 있는 이런 이상한 개각은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이 대통령 스스로 4년을 함께 뛸 단단한 인재를 찾지 못한 것인지, 끝까지 개인적 인연에 연연하는 것인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대통령이 이 볼품없는 내각으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그건 하늘이 이 대통령을 돕는 천운(天運)말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대통령에게 또 필요한 것은 국가적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다. 한반도운하 같은 정책은 정말이지 빨리 포기하는 편이 낫다. 4대강 살리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대통령이 직접 한반도운하를 포기한다는 것을 천명하지 않는다면 국민 신뢰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다. 남은 4년은 사실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 시간에 무엇인가 업적을 남기겠다는 고집을 버리고 10년 뒤의 이 나라를 위한 기틀을 놓겠다는 데에 집념을 가져야 한다.
성장과 함께 빈부의 격차를 줄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북한 핵을 제거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을 연다는 것은 아주 벅찬 과제다. 법과 원칙을 세워 기회를 공평하게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단순한 제도 개혁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기풍을 쇄신해야 하는 난제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이 모든 문제에 있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것을 주문한다.
대통령은 잘하라고 뽑는다. 그래서 잘하는 것은 당연하다. 80점 90점은 당연히 받아야 하는 점수이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 문민대통령들은 50점을 채우고 나간 분이 없다. 그러나 이 대통령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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