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차가 경적을 울리자 가로막고서 거친 손짓을 하며 '지금 사람이 건너고 있지 않느냐'며 고함을 친다. 비참한 밑바닥 인생이 토해낸 마지막 자존의 외침이 ‘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보행권이었다.
이 명대사는 ‘택시 드라이버’에서 로버드 드니로가 그대로 재연했던 걸로 기억한다. 맨해튼에서 뉴요커와 관광객을 구분하려면 횡단보도를 지켜보라는 말이 있다. ‘Don't walk’ 라고 쓰인 붉은 신호에도 거침없이 건너면 뉴욕 사람이란다.
‘건너지 말라’를 ‘걷지 말고 뛰어라’로 해석한다는 우스개다. 그 바탕엔 ‘도시의 주인은 사람’이라는 교통문화가 있다. 1997년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차량 속도를 높인다며 무단횡단을 막는 울타리를 치고 네거리마다 횡단보도를 하나씩 없앴다.
곧 ‘보행자가 소때냐’는 시위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폐쇄된 횡단보도를 건너다녔다. 뉴욕시장은 금방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운전자가 가장 조심할 것은 경찰차가 아니라 스쿨버스다. 노란 통학버스가 서면서 앞부분 양쪽에서 ‘stop' 사인이 펼쳐진다.
그러면 뒤 따르던 차는 물론 반대편 차도 어김없이 멈춰서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이스크림 차가 설 때도 양 방향 차들이 일단 정지한다. 1970년대 네덜란드의 ‘본에르프’를 시작으로 서구 주거지역엔 ‘보차 공존도로’가 보편화돼 있다.
주택가에 가까워지면 차로를 절반으로 좁히고 차도를 지그재그로 놓거나 노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며 보도 턱을 설치하고 교차로와 횡단보도 노면을 높이는가 하면 길가에는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는다. 차가 아예 속도를 못 내게 하는 ‘차량 길들이기’ 방식이다. 우리의 덕수궁길이 그렇듯이.
우리나라 자동차 1만대 당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가 1.36명으로 OECD 최고라는 통계가 나왔다. 영국 0.2명, 일본 0.29명보다 5~7배나 많다. 더구나 사망자 넷 중 셋이 주택가 이면도로 같은 폭 13m미만 도로에서 발생했다.
그래서 정부도 주택가 시속을 30㎞ 이하로 제한하는 ‘존(Zone) 30’을 도입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설물을 정비하고 관련법의 개정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먼저 ‘보행자가 최우선’이라는 의식 변화가 앞서야 한다. 운전자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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