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국격을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0-27 15: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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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국내 로펌 중 삼성의 권력과 견줄 정도의 내공으로 평가되는 곳이 ‘김&장’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 로펌은 그동안 관료 출신 인사들을 고액의 고문료를 지불하며 스카웃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공직자들의 전형적 회전문 인사의 본거지로 지목되기도 했던 곳이다.

쟁쟁한 인물들이 고위 공직에 있다가 김&장에 적을 두게 되거나 김&장에 있다가 다시 공직을 맡게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를 두고 국민들이 ‘정부와 로펌 사이의 보험성 회전문’이라며 우려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장이 클라이언트의 이해를 위해 이들의 재직시절 정보와 인맥에 눈독을 들인 결과라고 판단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공정위 핵심 관료들이 민간근무 휴직제도를 활용, 김&장에 취업, 거액 연봉을 받으면서 법률 자문을 해주다가 다시 복귀하는 사례가 시민단체에 의해 고발되기도 했었다.

최근 공직을 떠난 서동원 공정거래위 부위원장을 비롯 윤증현 기획재정장관이나 한덕수 주미대사, 김희선 전국정원 2차장, 박인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등도 회전문 인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김&장 출신들이다.

얼마 전 총리직을 그만 둔 한승수 전 총리가 구설에 올랐다. 김&장 고문으로 갔다는 소식이 알려진 탓이다.

총리로 발탁될 당시에도 김앤장 고문직 경력 때문에 대표적인 회전문 인사 논란에 휘말린 전력이 있었던 그다.

그런 그이니만큼 공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채 안된 시점에 김앤장에 복귀한 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 전 총리가 훌륭하고 실력있는 분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국회에서 같이 활동할 당시 옆에서 지켜보며 정말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던 기억이 난다.

그처럼 능력있는 분을 김&장 측에서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또 그의 풍부한 경륜을 그냥 썩히는 일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의 구직행보는 좀 더 심사숙고 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내 최대 로펌으로 간 전직총리의 모양새는 해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개인의 직업 선택 자유와 공직자의 전문성을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의 처신을 나무랄 여지는 별로 없다.

그러나 공직자의 사적 이익이 공익에 앞설 수는 없는 게 상식이고 공직자 윤리를 염두에 뒀다면 그의 처신은 달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전직 총리임에랴.

언젠가 인사청문회 석상에서 김&장에서 연봉 6억원이라는 고액의 고문료를 받았던 사실을 추궁받자 ‘공직을 그만두면 모래바닥에 코 박고 죽어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던 모 장관 후보자가 떠올랐다.

한 전 총리 역시 같은 입장인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남의 떡이 커보이는 건지 퇴임 이후의 시간을 ‘내것’에 국한시키지 않고 ‘모두의 것’을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는 다른 나라 공직자들의 처세가 한없이 부럽다.

해비타트 운동을 주도하며 지구촌 전체를 위해 봉사의 땀을 흘리고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이 그렇고 환경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고어 부통령의 퇴임 이후 행보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또 어떤가.

그들 모두 격조를 높인 이타행보로 재임시보다 더 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라고 그들처럼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한 전 총리처럼 능력있는 분이 이젠 나이도 있고 하니 현직에 계시기보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사회의 그늘진 곳이나 미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소외된 곳을 위해 사용한다면 어떨까 싶다.

그것이 우리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하는 일이고 국민들에게 갈채를 받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바이올린 중 최고 명품은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스트라디바리우스’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대로 꿈의 바이올린 대접을 받을 수 있는 건 여타의 바이올린이 흉내낼 수 없는 ‘명품 소리’ 때문일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명품 국가로 거듭나야 할 때다.

경제강국이 되고 선진국 반열에 든다고 저절로 명품국가가 되는 건 아니다.

바이올린이라고 모두 스트라디바리우스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명품 국가가 되려면 명품 국격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놓고도 유엔분담금 납부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우리다.

경제 성장은 자랑하면서 다른 나라 돕는데는 인색한 나라라고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고 있는 우리의 현실로 과연 명품국격을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불명예에 무감각하다는 건 그만큼 스스로를 함부로 다루고 있다는 증거다.

선진국으로서의 진정한 면모를 위해 그동안 무관심했던 부끄러운 현실부터 수정하도록 해야겠다.

대한민국이 고품격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시작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신뢰 회복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우리의 국격을 채워나가자.

진정한 명품국가를 꿈꾸는 것은 그 다음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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