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희망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김유진 / / 기사승인 : 2009-11-19 13: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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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홍문종 경민대학 총장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 부부를 예방한 자리에서 90도로 허리 굽혀 인사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자 논란이 커지고 미국의 외교문화가 달라졌다는 세계 언론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동안 미국이 외교석상에서 고자세 일변도였음을 보여주는 역대 미국 지도자의 사진이 새삼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945년,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연합국 점령군 사령관이 히로히토 일왕의 방문을 받을 당시 허리에 두 손을 얹은 차림으로, 연미복을 입고 차렷 자세를 취한 일왕과 나란히 포즈를 취한 사진과 2007년 아키히토 일왕을 방문한 딕 체니 미 부통령이 꼿꼿이 서서 일왕과 눈을 맞추고 악수하는 사진이 그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사 의전으로 홍역을 치루는 걸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일왕에게 머리를 크게 숙였다고 해서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던 얼마 전 우리의 경험이 떠올랐다.

대통령이 관련된 의전에 민심이 민감해지는 건 동서양 구분이 없는 것 같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미국은 외교적 관례였다는 백악관의 간단한 대응 정도로 상황이 종료되는 조짐을 보이는 반면 우리의 경우 그 파장이 꽤 오래 지속됐다는 점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결점을 찾아가는 양국의 문제해결과정에 국력의 차이가 작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끼게 된다.

많이 쇠잔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미국이 향유하고 있는 막강한 군사 경제적 파워가 가지고 있는 강자의 여유로움 같은 것 말이다.

강한 자가 갖추는 예의는, 똑같은 상황이라도 굴욕으로 비춰지는 약한 자의 그것과 달리 겸손의 미덕으로 인정되는 세상인심도 무관하진 않으리라.

또 하나, 상대국이 일본이었던 것도 변수였다.

만약 상대가 일왕이 아닌 영국여왕이나 외국의 어느 국빈이었다면 굴욕외교로 받아들이는 정서의 강도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우리에게 있어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틀림없다.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는 여러 요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까워진 여러 정황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의식 저변을 지배하고 있는 껄끄러움 때문에 늘 민감해질 수밖에 없는 나라가 바로 일본이 아닌가 싶다.

치욕의 역사와 아직은 일본을 능가하지 못했다는 열등감이 우리로 하여금 일본이라면 자지러지게 만드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게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일본이 가진 힘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다.

다만 민족적 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일 것이다.

일본과 관련해 떠오르는 두 가지 기억이 있다.

80년대 미국에서 생활할 때의 일인데 일본계 미국인인 한 여성 코미디언이 방송에 나와 자신의 얘기를 했다.

그녀가 일본인인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흑인과 데이트 한다고 하자 화를 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인 남자와 데이트 중이라고 하자 차라리 흑인에게 돌아가라고 대답했다는 내용을 코믹하게 풀어서 사람들을 웃겼다(지금 같으면 이런 코미디가 TV에 방송되지 못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일본인들의 정서를 본 듯해서 섬뜩한 느낌으로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한 가지는 미국으로 유학 온 재일교포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녀는 일본인과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일본인의 ‘배타적 국수주의의 잔재’(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혐한증’)를 들었다.

그녀와 똑같은 경험을 하지 않은 나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일본에 살면서 한국인이라 겪을 수밖에 없었던 서러운 과정들이 아마도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듯 보였다.

그녀는 한국인을 혐오하는 일본인들의 편견은 절대 치유될 수 없으며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도 한국인인 자신과 일본인과의 결합은 정말 어렵다고 단정 지어 말했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과의 알력에 매몰돼 있을 여유가 우리에게 없다.

미묘한 남북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육자회담 등으로 점점 애매해지는 우리의 처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주변국을 비롯한 국제관계도 어떤 식으로 가닥을 잡아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어려운 시점이다.

주변국을 대하는 방식-고자세여야 할지 저자세여야 할지-조차 엄청나게 고민해야 하는, 그 어느 때보다 고도의 숙련된 외교력이 요구되는 상황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 주요 4개국 대사가 비외교관 출신(꼭 부적절하다는 뜻은 아니다)으로 교체돼 있는 정황은 불안함을 가중시킨다.

이 험난한 파고의 와중에서 이제 막 뛰어든 신참 외교관들이 잘 해낼 수 있을지 솔직히 미덥지 않은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훈련을 거치지 않은 ‘외교 새내기’의 판단만으로 어떻게 제 기량이 발휘되는 외교현장을 기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그럼에도 희망의 노래를 잃지 않겠다.

내 희망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국력이 세계를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그 순간을 기대한다.

그 때쯤이면 대통령이 일왕에게 고개를 숙여도, 총리가 무릎을 꿇어도 그저 강자의 여유로운 미소로 태평양처럼 넓디 넓은 포용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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