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일 쉬슬러 여사와 미 해병 박물관

김유진 / / 기사승인 : 2010-08-16 13: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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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지난 7월 중순,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서 ‘조국과 해병대를 위하여’(‘For Country and Corps’)의 저자인 게일 쉬슬러 여사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쉬슬러 여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전투, 그리고 장진호 전투를 치른 미 해병 1사단의 사단장 올리버 스미스 소장의 외손녀이다.

쉬슬러 여사의 살아온 길 자체가 드라마 같았다. 스미스 장군의 둘째 딸이 어머니인데, 버클리를 나온 어머니는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항공장교 베네딕트와 결혼했다. 베네딕트 중위는 태평양 전쟁 중 남중국 접경지대에서 B-29를 몰고 폭격임무를 하다가 일본군 포화에 맞아 전사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쉬슬러 여사는 자기와 아버지는 만난 적이 없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11살 때 어머니가 재혼을 했고, 해병장교와 결혼했으며, 남편은 베트남 전쟁에 탱크 장교로 참전했다고 했다. 외조부, 만나지도 못한 아버지, 그리고 남편이 모두 군인인 셈이다. 딸이 셋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 혹시 해병장교와 결혼한 딸이 있냐고 물어 보는 건데, 그것을 깜박했다.

스미스 소장은 젊은 나이에 홀로 된 둘째 딸과 아버지를 보지도 못하고 태어난 외손녀 게일(쉬슬러 여사)를 무척 사랑했던 것 같다. 쉬슬러 여사는 어릴 때 외조부와 같이 산 기간이 길어서 외조부는 자기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했다. 외조부로부터 한국전쟁에 대해 들어 온 쉬슬러 여사는 캘리포니아 클레어먼트 대학(스크립트) 졸업논문도 외조부의 도움을 받아 한국전쟁에 대해서 썼다고 한다.

스미스 소장의 부인 에스터 여사가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2차 대전 때 남편 스미스 준장은 해병 1사단 부사단장으로 처절했던 펠리우 상륙작전을 이끌었고, 육군항공장교인 사위는 남중국에서 격추되어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말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혹한의 장진호 지역에서 해병 1사단이 중공군 10개 사단에 의해 포위되어 있을 때 에스터 여사와 두 딸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쉬슬러 여사는 한국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한 자기가 외조부에 관한 책을 작년에 냈는데, 한국인으로서는 내가 처음으로 자기 책을 읽고 연락을 해주었다고 고마워했다.

쉬슬러 여사는 나에게 콴티코 해병기지 앞에 있는 국립해병박물관(National Museum of Marine Corps)에 가볼 것을 권했다. 기존의 해병박물관을 폐쇄하고 2006년에 새로 문을 연 해병박물관은 무척 현대식으로 되어 있다. 횃불 모양의 건물이 인상적인데, 들어서자마자 천정에 코르세어 전투기가 전시되어 있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투,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장진호 전투에서 해병 지상군을 근접 지원했던 해병 항공단의 주력기종이 바로 코르세어(Corsair)다.

박물관에는 해병의 역사와 훈련과정, 장비 등이 전시되어 있고, 이어서 2차 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 전시실이 잘 만들어져 있다. 돌이켜 보면, 미 해병은 주로 아시아에서 전투를 했다. 일본군과 북한군, 그리고 베트콩 및 월맹군과 전투를 한 것이다. 미 해병은 2차 대전, 한국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그러나 미국은 단지 2차 대전에서만 승리했을 뿐이다. 한국전쟁에선 비겼고, 베트남 전쟁에선 졌다.

한국전쟁실에는 낙동강 전투, 인천과 서울, 장진호가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다. 장진호 전투실은 혹한의 전투를 연상하도록 춥게 되어 있었다. 해병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닌 라이프지(誌) 종군기자 던컨이 찍은 유명한 사진들과, 명예훈장을 받은 전사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에선 한국전쟁 중 미 해병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아직도 우리 국민들이 ‘맥아더의 신화’에 매달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년에 번역되어 나온 핼버스탐의 ‘가장 추웠던 겨울’(The Coldest Winter)이 ‘맥아더의 신화’를 벗기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 같다.

최근에 나는 빌 슬론(Bill Sloan)이란 기자가 쓴 ‘가장 어두웠던 여름’(The Darkest Summer)을 읽었다. 이 책도 미 해병대가 한국을 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런 책이 번역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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