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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道理)에 맞지 않는 변론, 도리가 아닌 말을 도리에 맞는 것처럼 억지로 공교(工巧)롭게 꾸며 대는 말을 ‘궤변(詭辯)’이라고 한다.
궤변은 거짓을 옳은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 남을 속이기 위한 논리일 뿐, 그 자체로는 이치에도 안 맞고,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동양의 대표적 궤변으로 ‘흰말은 말이 아니다’라는 뜻의 이른바 ‘백마비마(白馬非馬)론’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 공손룡(公孫龍)의 이야기다.
공손룡은 ‘백말을 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말(馬)은 어떤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지만, 백(白)이라는 것은 색깔을 가리키는데, 색깔은 형태를 칭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백말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가령 법에 ‘말을 타고 국경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고 치자. 국경수비대원은 백마를 타고 국경을 넘어서는 자를 발견하면 당연히 그 규정에 따라 그를 붙잡을 것 아닌가.
그런데 붙잡힌 자가 “이것은 백마지 말이 아니다, 말이 아니므로 괜찮다”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궤변이다.
최근 국민의당에 합류한 천정배 의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상당히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어디까지나 ‘남을 속이기 위한 논리일 뿐’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궤변이다. 더불어민주당을 ‘패권주의 정당’으로 규정하면서도 그 정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천 의원은 이날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자신이 더민주 대신 국민의당을 선택한 원인으로 더민주의 ‘패권주의’를 지목했다.
천 의원은 “야권은 이미 폐쇄적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수권세력으로 인정 못받고 있다”며 “우선 정권교체를 위해 야권 주도세력부터 교체해야 되겠다는 것이 제 생각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문재인 대표가 공개적으로 통합하고 싶다는 의사도 밝힌 적이 있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함께 하자는 권유가 있었다. 그러나 역시 패권주의를 해체할 전망이 안 보인다고 판단해 함께 할 수 없었다”고 거듭 ‘패권주의’의 폐단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더민주는 ‘패권주의’에 사로잡힌 정당이기에 같이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심지어 그는 작년 12월 13일 ‘국민회의’발기인 대회 때에 더민주를 사실상 ‘새누리당 2중대’, ‘제2의 민한당’, ‘가짜 야당’으로 규정하는가하면, “(더민주는)이미 수명을 다한 정당이고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지 못하는 야당으로 전락했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자신이 ‘패권주의 정당’, ‘가짜야당’, ‘수명 다한 정당’으로 규정한 정당과 손을 잡는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천 의원은 이날 같은 방송에서 더민주와의 야권 연대에 대해 “잘 조정해야 될 중요한 쟁점”이라며 “적어도 비호남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주지 않을 방안이(필요하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호남에선 서로 경쟁하되 비호남에선 연대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단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어차피 서로 손잡고 연대해야 할 정당이라면 왜 그 당을 탈당했는가. 그리고 왜 그 당에 들어가지 않고 국민의당을 선택했는가.
혹시 총선에서 자신이 공천지분을 갖기 위해 탈당을 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지분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국민의당에 합류한 것은 아닐까?
이런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더민주 측은 통합 논의 과정에서 ‘천 의원이 공동 비대위원장과 5대5 비대위원 배분, 광주 공천권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천 의원은 “상당한 왜곡”이라며 “패권주의의 해체와 호남에서 좋은 시스템을 통해 좋은 사람들이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자는 것이 제 취지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하지만 ‘수명이 다한 정당’이라고 스스로 규정한 정당과 ‘연대해야 한다’는 그다. 그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는 그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그가 국민의당과 전격통합 한 배경에 어떤 자리가 사전에 약속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정치인에게 ‘정직’과 ‘진정성’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한 정당을 창당하는 핵심인사라며 ‘궤변’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각 개별 당의 경쟁이 아니다. 국민의당,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어느 당이 이기는가하는 선거가 아니다"라며 "이번선거는 양당구조를 깨느냐 못깨느냐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안철수 의원이 훨씬 더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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