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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첫 개각을 앞두고 '협치 내각'이 정국의 새 화두로 떠올랐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3일 뜬금없이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며 야당에 ‘협치 내각’을 공식제안 한 탓이다.
실제 김 대변인은 ‘협치 내각’에 대해 “국회 개혁 입법 등 야당과의 협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야당에 입각 기회를 준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장관 자리 몇 개 정도는 야당 인사들에게도 떼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미래당 등 보수정당에게도 문호를 열어 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반응은 아주 싸늘하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24일 "지금은 전혀 그럴 단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KBS 라디오 '최강욱의 최강시사'에 출연, "협치는 야당을 상대로 같이하자는 것인데 거기에 따른 제안과 설명이 분명히 있어야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민주당) 의석이 130석밖에 안 되니 협치 해야 한다는 것은 뜬금없다”며 “선의라고 하더라도 분명한 정치적 도의는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윤영석 수석대변인도 “협치는 장관 자리를 나눈다고 되는 게 아니라 청와대가 야당에 귀를 기울이고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데서 출발한다”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역시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께서 야당과의 협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신 것은 한편에서 다행이지만 현재로선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며 "장관 자리 한두개 내어주면서 협치로 포장 하려는 의도라면 안 된다"고 부정적 시각을 보였다.
이어 "야당을 진정한 국정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협치 내각의 형식이 아니라 협치 내용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신뢰부터 쌓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에 일방적으로 ‘연정’을 구애하던 민주평화당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실제 평화당은 이날 오전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다.
이용주 원내대변인은 “민주당이나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협치 내각을 제안해 준다면, 제안을 정확히 파악해서 당 차원의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며 “뜻이 있다면, 조속한 시일 내에 공식 제안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만 그는 “현재는 협치 내각 참여여부를 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보수정당과의 ‘연정’을 염두에 둔 청와대의 ‘협치 내각’ 구상은 평화당과 정의당만 참여하는 ‘진보 내각’에 그칠 것이란 부정적인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사실 이렇게 된 데에는 문재인 정권의 잘못이 크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가 80%에 육박할 만큼 고공행진을 거듭 할 때에는 야당의 목소리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초반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한 경우가 과거 이명박정부, 박근혜정부 등 보수 정권보다도 많았을 만큼 일방통행식 인사를 단행했다.
개헌 문제에 있어선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물론 친여 성향의 민주평화당과 정의당까지 모두 대통령 개헌안 발의안 철회를 요청하며, 국회에 맡겨달라고 요청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경제파탄 등으로 인해 대통령 국정지지율과 민주당 정당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황에서 ‘협치 내각’을 하자고 하니 뜬금없는 소리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일 것이다.
청와대가 실제로 협치 내각을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일종의 '협상 카드'로 내밀면서 국면을 환기하려는 의도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일 야당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협치를 거부한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데다, 설사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국정이 실패할 때 책임을 나눠질 수 있어 일종의 보험 성격이 짙다는 말이다.
이런 ‘협치’라면 아무 의미 없다. 정말 협치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장관 자리 몇 개를 선심 쓰듯 야당에 떼어줄 게 아니라 ‘협치’의 근간인 다당제를 정착시키는 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즉 선거구제 개편 등에 여권이 적극 나서야 한다는 말이다.
다당제가 정착되는 선거구제로 개편된다면, ‘협치’는 굳이 청와대가 제안을 하지 않더라도 제도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 아니겠는가.
앞서 2005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중대형 선거구제로의 개편을 조건으로 내각 구성권을 제1야당에 넘기는 대연정을 제안한 바 있다. 그것에 비하면 문 대통령의 ‘협치 내각’ 제안은 진정성 면에서 한참 뒤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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