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돌 빼는` 정치, 개혁 아니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5-06-15 10: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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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성 디지털크리에이터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 보면 오래된 돌담 하나쯤은 마주하게 된다. 가지런히 다듬어진 벽돌이 아닌,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자연석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담장이다. 얼핏 보면 허술하다. 곳곳에 틈이 보이고, 울퉁불퉁한 겉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다. 그러나 그 담장은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을 버텨왔다. 단단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단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정치도 그렇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법과 제도, 행정 시스템과 사회적 관습 역시 수많은 이해관계와 타협, 충돌과 반성을 거쳐 형성된 것이다. 완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허술한 것도 아니다. 오래된 시스템은 누군가의 집요한 의지로, 또 누군가의 묵묵한 책임감으로 유지되어 왔다.

그런데 요즘 정치를 보면, 담장의 ‘아랫돌’을 너무 쉽게 빼려 한다. 위태로운 곳을 괴기 위한 것이라지만, 실제로는 무너뜨리기 위한 계산이 더 커 보인다. 헌법기관의 해체, 검찰청 폐지, 공영방송 개편, 사법부 구성 전면 개편 등 일련의 ‘개혁’ 움직임은 단순한 제도 손질이 아닌, 아랫돌을 통째로 들어내는 정치공작의 일환으로 비친다.

정치에서 ‘아랫돌’은 체제의 근간이다. 법치, 권력 분립, 행정의 중립성, 언론의 자유, 선거의 공정성 같은 기본적인 장치들이다. 이러한 기반 위에 윗돌, 곧 각 정권의 정책과 인사, 제도 혁신이 올라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순서가 뒤바뀌었다. 자신들의 이상향을 실현하기 위해 기반부터 해체하려 든다. 부실공사도 이보다 못할 것이다.

물론 개혁은 필요하다. 낡은 제도는 손봐야 하고, 시대에 맞지 않는 구조는 교체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초를 지키면서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지, 기초를 무너뜨리고 위에 덧대는 것이 아니다.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방식은 언뜻 효율적이고 개혁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대개 허물기 위한 개혁일 뿐이다. 위로 올라가려면 기반을 강화해야 한다. 허약한 기초 위에 탑을 올리면, 그것은 무너질 운명이다.

최근의 정치행위 중 일부는 이 원칙을 무시하고 있다. “검찰이 문제니 없애자”, “사법부가 방해되니 대법관을 늘려 의석을 바꾸자”, “선거제도가 불리하니 아예 바꾸자”. 이러한 논리는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그러나 단순한 해법이 항상 좋은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은 복잡하고, 그래서 정치는 다듬는 일이어야 한다.

이러한 경향은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보수가 다져놓은 토대를 진보가 부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반대의 경우도 목격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권의 성과는 폄하되고, 제도는 폐기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성급한 이상론으로 채워진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오래가지 못한다. 현실은 늘 타협과 절충, 그리고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지 제도나 시스템만이 아니다. 국민의 상식과 공동체의 기억, 공공선을 위한 기본 감각 영역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멋들어져도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건 개혁이 될 수 없다.윤리 없는 개혁은 독재,, 절차 없는 개혁은 폭력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분기점에 서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아랫돌을 보강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단단한 돌로 다시 쌓고, 틈은 잔모래와 진흙으로 메워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개혁이고, 진정한 혁신이다. 뜯어고치는 정치가 아닌, 다져 쌓는 정치로 가야 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아랫돌 하나가 무너지면, 담장은 결코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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