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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겸 편집위원 |
몇 해 전 영화 “역린”이 상영되었다. 필자는 영화 “역린”의 마지막 장면에 정조가 말 달리며 한 독백한 <중용 23장>의 문장을 통해 정치인이 정치를 어떻게 해 나가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다음(기차:其次)은 세밀함(곡:曲)에 이르는 것이니 세밀함(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其次致曲 曲能有誠:기차치곡 곡능유성) 정성이 있으면 형상(모습)을 이루고, 형상(모습)을 이루어지면 분명히 드러난다(誠則形 形則著: 성즉형 형즉저) 분명히 드러나면(著)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인다(著則明 明則動:저즉명 명즉동) 움직이면 변(變)하고, 변하면 화합(化)한다(動則變 變則化:동즉변 변즉화)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至誠)이라야 능히 화합할 수 있다(唯天下至誠 爲能化:유천하지성 위능화)
정치인은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큰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것을 소홀히 할 경우 국민의 삶 전체를 망칠 수 있다. 작은 일도 정성을 들여 최선을 다해야된다. 정성을 다하면 그 결과가 눈에 보여지게 된다. 눈에 보이는 결과는 선(善)에 의해 행하여 진 것이므로 감동시킬 수밖에 없다. 감동은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변하게 만든다. 그래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선(善)이 존재하는 사회가 살맛 나는 세상이다. 사소하다고 생각하고 내뱉는 악의적인 말과 사소한 악행은 국민들의 마음을 닫게 한다. 그 자그마한 일(곡:曲)이 시작되어 결국 세상은 험하고 전부 악마로 가득 찬 곳으로 바뀌고 만다.
“천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이 문장의 출발점인 “曲” 즉, 자그마한 일에 있다. 23장은 致曲(치곡)→誠(성)→形(형)→著(저)→明(명)→動(동)→變(변)→化(화)의 관계를 갖고 있다. 치(致)는 “미루어 지극히 함”이요, 곡(曲)은 “세밀함(작은 것)”이다. 형(形)은 “속에 쌓여 밖에 나타난 형태”, 저(著)는 “또 더 드러남”, 명(明)은 “또 광휘를 발산(發散)]함”, 동(動)은 “성실함으로 남을 감동시킴”, 변(變)은 “남이 나를 따라 변하는 것”, 화(化)는 “그 소이연(所以然)을 모름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理)에는 두 가지 측면인 소이연과 소당연이 있다. 소이연은 자연과학적 원리이고 소당연(所當然)은 윤리적 원리를 담당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을 살펴보자. “여객선에 대한 안전관리 지침”은 과학적 원리인 소이연에 해당된다. 안전 불감증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소이연에 해당되는 안전관리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아주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소한 것에도 다음 단계인 성(誠)을 다하는 것이다. 따라서 致曲(치곡)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극히 하는 것, 즉 誠(성)이 된다. 정성을 다함이 “致曲”이다. 성(誠)은 우주의 만물이 운행되는 원리이다. 즉, 하늘(天), 땅(地), 사람(人) 3재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꿰뚫음을 뜻한다. 그래서 “성은 하늘의 도이고 성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 是故誠者天之道也;思誠者人之道也 :시고성자천지도야, 사성자인지도야)”라고 말한다.
세월호 사건도 아주 작은 것(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큰 문제로 전개된 것이다. 큰 것은 작은 것의 모임이다. 삶은 순간의 합이며 부분의 합 이상이다. 큰 것의 출발인 사소한 것, 조그마한 것을 게을리하면 큰 재앙을 갖게 된다. 대인관계, 사업, 정치 등
모든 곳에서 항상 처음을 사소히 하지 말고 매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면 큰 인연을 얻게 되고 큰일을 해낼 수 있다.
개울물이 모여 시냇물이 되고 시냇물이 모여 강이 되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출발의 뿌리(기본)가 있다. 용비어천가 2장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 곶 됴코 여름 하니”를 살펴보자. 뿌리가 깊지 않으면 꽃과 열매가 하찮은 것이 될 것이다. 즉, 작은 것에 대한 성실(誠)이 없다면 건강한 꽃이 열려 풍성한 과일을 얻을 수 있는 결과(실:實)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성(誠:정성)은 실(實:결과, 열매)이다. 작고 사소한 것에도 성실해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성(誠)은 바로 우주 만물이 운행되는 원리이다. 그 원리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꿰뚫어 있다. 그래서 “성(誠)은 하늘의 도이고 성(誠)이 되려는 것은 사람의 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성실한 것은 우주의 원리이고,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라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우주의 운행 원리인 성을 깨닫고 배우고 실천하는 데에서 인격이 완성되며, 결국에 가서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天人合一을 정치와 대입하여 푼다면 국민은 하늘(天)이며 정치인은 人에 해당된다. 국민과 정치인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天은 人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군주민수(君舟民水)이다. 정치인(君)은 배(舟)와 같고 국민(民)은 그 배를 띄워 주는 물(水)과 같다. 따라서 정치인의 실정은 국민을 분노를 야기시켜 배를 전복시킬 수 있다.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국민을 대하여야 한다.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의 주체는 정치인이 하여야 한다. 국민에게 성실하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실함으로 국민을 감동시키면, 천하가 변(變)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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