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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기보다는 진폭이 큰 사고의 파장을 일으키는 어휘 선택과 예측불가의 파상적 어투로 좌중에게 긴장과 이완을 던지며 밀고 또 당겼다.
열여섯살, 고향 남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나와 세상살이를 처음 시작했다. 자전거는 "스스로 돌려야 가는 차"라는 뜻이니 자전거 한대로 시작한 홀로살이는 나름 화두가 분명 했던거다.
남들이 가출을 시작할때 이미 출가를 해버린 그에게서는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조숙증상으로 세상을 관조하기보다는 간파해버리는 습관이 있다.
서너마디 말을 건네고 "나라에서 나를 알아주는 증표가 이것 뿐일세!" 라며 주민등록증을 보여준다.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김종록작가가 핀잔같은 추임새를 넣는다.
"허참, 세계 비엔날레 그랑쁘리 작가가 그게 먼 소리여, 이 냥반이 아직도 자기가 누군지 몰라!"
그건 정확한 지적인듯 싶다. 16살, 오직, 자전거를 화두로 세상에 나온 그가 세계비엔날레 그랑쁘리 작가가 될때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의 바퀴를 돌려 왔다는게 "맹물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왔다!"는 말보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긴 했다.
20대 때 소설풍수를 써서 수백만부를 파는 작가가 된 고전정통 소설가 김종록씨는 "진공재는 이무기다. 한국서단에서 손꼽히는 병장기다. 단기필마로 철필을 휘두르는 고독한 전사다. 천상의 문곡성(文曲星)에서 지상으로 유배 온 자이기에 지독한 고난의 연대를 살아야 하지만 천재성과 결기는 오히려 더 빛을 발한다. 내 작업실 책상 앞에 그의 작품을 걸어둔 까닭이다."고
말했다.
스스로 나오는 창작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진공재의 철필을 보며 스스로를 경책한다는 말이다.
김종록 작가의 극단의 존경을 표하는 인물평에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로 일갈하는 그에게 물었다.
"전각이 뭐냐!" 고, "잉?" 눈 주위로 자글한 주름이 확 펴질 정도로 눈을 크게뜨고 반뼘도 안되는 거리까지 얼굴을 마주댄다.
참 동그란 눈을 가진 사람이다.
머리만 하얀게 아니고 속도 하얀 사람이다. 그 하얀 속이 보일까봐 선이 아니라 악을 가장한 언행을 씀벅씀벅 내지르며 위악적 캐릭터를 만들어 온 사람이다. 전각작가 진공재는 "평생 팥죽만 끓인 사람한테 '팥죽이 뭐냐?' 이렇게 던진거여 시방, 아따! 이 냥반 겁이 없는겨? 뭘 모르는겨?"
16살 때 타던 자전거 한대 끌고나와 오직 한 길 일 이라고는 전각만 해왔다는 그가 공손히 답을 했다.
내가 '뭘 모르는 놈'이 아니라 '겁이 없는 놈'으로 판단된 듯 하다.
"사람들은 전각 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냥 글을 쓰기도 허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하는거요. 때때로 배고프면 밥 바꿔 먹어야 하니 이름 석자 써주는 도장도 파주고 허는거요. 내가 아는 전각은 그냥 사는 일이요. 농사꾼이 농사짓듯이..."
내가 아는 농사꾼은 두종류가 있다. 하늘을 보고 농사짓는 자와 땅을 보며 농사를 짓는 자다.
생명의 흔적같은 씨앗을 받쳐들고 이 씨앗의 싹을 틔워줄지 햇빛을 풀어 꽃을 피우고 비와 바람으로 키우고 여물게 할지를 하늘보며 묻는 자와 무턱대고 봄 되면 씨뿌리고 가을엔 거두는 자다.
주면 주는대로 뿌리고 거두는 자의 평화와 하늘의 뜻을 물으며 흙 속에 묻힌 생명과 교감하는 자의 번민은 각자 그들의 몫이다.
그리보면 우리의 삶은 모두다 농사다. 각자의 땅에 농사를 짓는 일이다.
좀 특이한 농사를 짓는 그의 말처럼 햇빛도, 비바람도, 평등한데 무얼 심고 가꾸며 열매를 따는가,뿌리를 캐는가, 또는 몸통전체를 취하는가, 아니면 무성하게 자라난 그 풍요자체를 탐하는가에 따라 인생은 격이 생긴다는 믿음이 생긴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그 단단한 곳에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곤 하는걸까?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붓으로 펜으로 그리고 쓰고 합니까? 그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은 되기 싫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를 각인하고 싶었나 보다. 채근담 일만 이천 육백 열 한 자를 돌에 새겨 놓으니 꼬박 십년이 흘렀다.
1989년, 겨울, 그 각고를 끝낸 밤, 자고 일어나니 진공재는 사라지고 낯 모르는 백발의 사내가 진공재를 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 속에서...
환골탈태! 십년공부는 많은걸 바꿨다.
우선 단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된 자신의 모습에서 진공재는 갑자기 해리포터의 세상으로 순간이동을 한듯 혼돈의 시간들을 마주쳤다.
하지만 낡은 자전거의 페달을 힘겹게 밟듯이 달려온 그는 자신의 자전거에 보이지 않는 터보 엔진이 장착된 듯한 확신이 차오르고 있었다.
채근담의 일만이천 육백열한자는 돌에 새겼지만 자신의 뼈에 새긴듯 선명한 희망으로 기쁨으로 솟아났다.
그때부터 좋은 인연들이 이어져 인사동 사거리 따뜻한 햇살 잘드는 골목안에, 언제든 생각하고, 책보고, 노래하고,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도 했고, 때때로 비엔날레 그랑쁘리 작가라는 허명을 팔아 소한마리 값을 하는 작품을 팔기도 했다.
"그냥 지나다가 부동산 계약하게 막도장 하나 해주쇼 하는 분도 가끔 있어서 웃으면서 파 주지요. 그런 분한테 돈 받으면 한끼 공양 받았다 생각하면 기분 좋지요. 때때로 공직에 나가거나 출마 하시는 분들이 큰 돈들고 오시는데 승리의 기운이 있어서 좋다니까 나도 기운이 나요" 라며 웃는다.
작업장 인터뷰 날 홀리듯이 작업장을 들어온 인물의 돌발인터뷰 ,
"작업장 앞을 지다가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껴 끌리듯이 들어 왔어요. 여긴 뭐하는 곳이지요?"
엉겹결에 작업장에 들어온 장인영씨는 '지금 나를 지키는 기운이 필요한데 그 기운이 느껴져서 여기 이끌려 왔네요. 좋은 기운이 느껴져요'라며 돌에 새긴 자신의 이름과 문양을 손끝에 느끼며 흡족함을 표하자. 달리기에 일등한 아이처럼 신난 얼굴로 웃어버리는 진공재는 아직도 철없는 아티스트다.
유쾌한 악동끼를 품은 백발의 전각작가 진공재는 세계 비엔날레 그랑쁘리 작가 이기보다는 요즘 연예가에 화제가 되고 있는 '백발소년단'에 더 어울리는 캐릭터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방탄소년단'을 대치할 유일한 한류의 대안 이라고 주장하는 '백발소년단'에 2부 멤버로 추천해 주기로 했다.
남들이 붓으로 세상을 그릴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돌에, 그리고 더 강한 철로 힘겹게 글과 그림을 그려온 그가 꿈꾸는 것이 무얼까 라고는 묻지는 않았다.
"나는 이제, 흐르는 물에 사서삼경을 쓸 때가 된 것 같아! 안 그런가?"라고 말 할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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