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 의 죽음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10-23 19: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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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김형오 {ILINK:1} 나는 한때 이 나라의 모든 고위공직자들의 자녀는 외국 유학을 보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무슨 정책대안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분노였고 절규였다.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와 교육정책으로 희생되고 왜곡되는 우리 자녀들과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우리 위정자들이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며칠 전에 그 분노가 새로이 일어났다. 한 ‘기러기 아빠’의 외로운 죽음이었다. 숨진 지 5일만에 단칸방에서 쓰러진 술병들과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기러기 아빠’의 잇따른 비보는 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을 넘어 사회적 아픔으로 다가온다.
특히 형편이 넉넉한 사람이 아닌데도 자식에 ‘올인’하는 보통사람들의 죽음은 너무나 처연하고 안타깝다. 그 어떤 이유든 ‘기러기 아빠’의 죽음은 지극히 한국적이고 또한 사회적이다. ‘기러기 아빠’처럼 한국의 사회적 모순을 대변하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그 죽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잠시 ‘안됐다’는 생각일 뿐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지 않고 있다. 교육당국도 관심없고 지도층들도 그저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세계에서 더 관심을 갖는다. 한국의 ‘기러기 아빠’에 대해 참으로 기이하게 바라보고 있다. 올 초 워싱턴포스트는 ‘한국의 기러기 아빠’를 특집으로 실으면서 가정의 해체를 재촉하는 ‘뒤틀린 선택’이라고 보도했다. 삐딱한 시선이었다. 그렇다. ‘기러기 아빠’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초상이다. 우리사회의 모순이 그대로 반영된 삶의 단면이다.

‘기러기 아빠’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아빠들의 희생이고 엄마들의 고통이다. 가정의 해산을 통해 가족의 희망을 찾으려는 아이러니의 극치이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 사교육비의 증가, 신분상승 욕구, 세계화 등이 맞물려 스스로 택한 ‘천로역정’이다. 아니 일종의 유행이요 치료 백신이 나오지 않은 강력한 전염병이다. 상류층에 한정되었다가 이제는 중산층 이하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기러기 아빠’는 우리사회의 교육, 복지, 취업, 공동체 등 총체적 시스템에 대한 적신호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민주주의는 든든한 중산층을 기반으로 한다. 그 중산층이 기러기 가족이 되어 이 나라 저 나라로 날아가 버린다.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외국으로 공부하러간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다. ‘기러기아빠’도 한해 1만명 이상씩 생긴다고 한다. 지금은 이 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나 교육부를 비롯한 어떤 기관도 정확한 통계를 내지 못한다. 내가 당의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두달간 미국연수생활때 한국정부에서 파견된 교육관이나 총영사를 만나 물어봐도 자세한 내용을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데 대사관이나 영사관과 접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저 생이별을 하지 않으려면 모두 이민을 가야한다. 한 TV홈쇼핑업체가 이민상품을 내놓자마자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이민 박람회에는 이틀간 1만5000명이 북적거렸다. 이민을 가고 싶은 주된 이유는 바로 교육 때문이었다. 우리 ‘교육 엑소더스(Exodus)’의 실상이다.

사교육비가 연간 16조원이나 된다고 한다. 해외유학 및 연수비용도 1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만해도 국가의 교육예산 25조원을 능가한다. 이것이 어떻게 정상적인 나라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기러기 아빠’는 결국 교육불신의 결과다. 그래도 이들은 행동파지만 속이 부글거리면서도 단행하지 못하는 ‘아빠’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그중에서도 때만 되고 준비만 되면 ‘조국’을 떠나겠다는 사람 또한 얼마나 많은가. 한결같이 교육시스템을 못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회 지도층이 앞장섰다. 지도층치고 자식을 외국에 안보낸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도층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이기주의 때문에 문제가 더욱 꼬이게 되었다. ‘내 자식’은 해외로 빼돌리고 ‘남의 자식’만 가지고 입시제도를 개선하고 교육정책을 바로 세우겠다는 자세로는 백년하청이다. 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비교육적인 작태인가. 지도층이 이럴진대 돈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야말로 필부필부(匹夫匹婦)들도 따라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랴.

나는 연수 중 짬을 내서 ‘기러기 엄마들’을 만난 적이 있다. 어렵게 만났지만 면담시간은 길어졌고 헤어질 땐 아쉬움이 남았다. 정치인이 자기들 문제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삼는 듯 했다. 내친 김에 ‘기러기 새끼들’ 즉 나홀로 유학온 아이들도 여러명 만났다. 또 유학 관계자들과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결같이 조국에 대한 애정은 강렬했고 우리교육에 대한 우려는 깊었다.

보란듯이 성적도 쑥쑥 올라가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현지 적응이 힘들어 한국에서보다 여의치 못한 경우도 있었다. 누적되는 유학 비용, 언어와 문화의 스트레스, 아이들과의 신경전, 교포사회로부터의 냉대, 외로움, 남편에 대한 미안함과 속상함 등등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대학진학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 하겠다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돌아가야 하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는 엄마들도 있었다. 누가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 보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 주었는가. 잊혀진 국민, 그들이 바로 ‘기러기 아빠’이며 ‘기러기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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