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복원사업에 대한 평가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5-12-05 21: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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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권 서울시 교통연수원장·정치학박사 {ILINK:1} 청계천복원사업은 과거 역사문화의 복원 사업인 동시에 미래 서울의 디자인사업이었다. 오랫동안 존재하던 자연하천의 소생사업인 동시에 새로운 도심의 인공하천조성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현대적 토목기술의 현란한 전시장인 동시에 온갖 이해가 얽힌 인간관계의 갈등 전시장이었다. 또 이 사업은 복개도로와 고가도로를 헐어내고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을 복원했다는 점에서는 완공된 사업이나, 도심에 부적격한 온갖 상업기능이 뒤범벅되어 아직도 해방 후 50여년전의 모습 그대로인 청계천변 도심재개발 측면에서는 이제 막 시작된 사업일 뿐이다. 그리고 수많은 난제를 안고 있던 청계천복원사업이 세계인이 모두 놀라해하는 바와 같이 2년반이라는 단기간에 완공될 수 있었던 정치 행정방식은 정책학연구의 새로운 시금석이 될 것이다.

청계천을 보면 그 시대가 보인다. 조선시대 500년의 개천관리(濬川)과정에도 그 시기마다의 가치관이 스며 있었다. 처음 개천(開川)을 개척한 건국초기인 태종, 세종시기에는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고 그것을 굳건히 수성하려는 현실적 경세사상이 뒷받침 되었다. 개천을 방치한 시기인 사림이 지배했던 조선중기 300여년 간은 명분을 중시하는 사림들의 가치관을 드려다 볼 수 있다. 수해로 인한 민의고초를 해결하기 위하여 대대적 준천을 했던 조선후기 영조의 치세에서는 실학적 사유를 공유하는 실용파 관료들의 가치관이 보인다. 또 청계천위를 덮은 복개도로와 콘크리트 고가도로를 보면 경제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개발시대의 가치관이 보인다. 거액의 공사비를 투입하여 고가를 헐어내고 청계천복원사업을 하는 데에는 생태환경을 존중하는 이 시대의 가치관이 스며있다. 먼 훗날 지금의 청계천사업이 어떻게 평가받을지는 아직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 시대를 이끌어간 사람들, 살아간 사람들의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청계천복원사업은 박경리 선생을 정신적 지주로 한 일단의 전문가 그룹인 청계천살리기연구회가 1990년대 초부터 모닥불을 지펴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2년 서울시장선거를 맞아 이명박 시장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어 시민합의를 도출해 냄으로써 현실화 계기를 맞이하였다. 필자는 민간전문가들의 아이디어가 하나의 구체적 정책으로 만들어져가는 과정인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직접 체험하였고 또 청계천복원사업의 집행과정에서 청계천복원시민원회의 상임부위원장을 맡아 시민과 실무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갈등의 조정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청계천에 관한 수많은 과거의 역사 문화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조선왕조가 청계천을 다루던 정치 행정 방식을 민의 입장에서 분석해 볼 수 있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먼저 청계천의 역사 문화를 간략히 개관해 보고 조선왕조가 준천을 하면서 민을 대하던 정치 행정 방식을 현대적 관점에서 조명해 보겠다. 청계천이 갖는 과거의 역사문화적 배경을 감안하고 미래 완성될 청계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현재의 복원사업을 보는 시각을 정리해 보는데 그치려 한다.

조선시대 세종대(15세기)에 개천을 둘러싼 명당수 논쟁이 있었고 그 300여년 뒤인 영조(18세기)때에는 준천대역사에 따른 논란이 있었다. 또 그 300여년 뒤 현재(21세기)의 청계천복원을 놓고 벌어졌던 서울시장선거 당시의 논쟁과 복원공사중에 일어났던 숱한 논쟁을 보면서 역시 역사는 돌고 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청계천복원을 보는 시각도 당연히 이러한 역사의 순환논리하에서 그 사업이 갖는 복합적 상징성이 정리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청계천복원사업을 정책결정과정, 사업진행과정, 역사문화복원과정, 자연생태복원과정으로 구분 고찰해보고 마지막으로 미래의 청계천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청계천을 살리자는 민간 전문가집단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한 하나의 현실 정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은 정책학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물론 정치 행정 실무자들에게도 귀중한 사례가 되리라 본다. 우리의 자연환경과 역사 문화에 대해 무한한 애정을 가진 민간전문가들의 청계천살리기 아이디어는 1990년대초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그 정신적 지주로 가담하면서 불붙기 시작하였다. 처음 청계천연구회가 청계천살리기를 주제로 포럼을 시작할 때만해도 그들은 우리 세대에는 실현이 어렵고 이 20~30년 후에나 가능하리라 예상하면서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수시로 포럼을 개최하면서 그 불씨를 살려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서울시는 물론 어느 누구도 이들의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2년 서울시장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그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여당과 야당 서울시장 후보 모두에게 그들의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많은 이들이 불가능한 일로 치부할 때 현 이명박 서울시장이 과감히 이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고 실현가능한 구체적 정책으로 개발하였던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내걸었던 청계천복원 공약은 선거과정에서 일부 전문가들의 비판적 우려와는 달리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함으로서 현실화의 계기를 맞이하였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은 선거라는 정치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찬반 토의를 거쳤고,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합의를 자연스럽게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사업 착공 전에 전문적 검토와 시민 합의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음으로써 다른 수많은 국책사업의 정책결정과정과 뚜렷이 구별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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