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지역을 중심으로 베트남이나 중국, 필리핀 등지에서 온 외국인 신부 숫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언어 소통 문제, 가정 폭력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이곳저곳 찾아보아도 정부차원의 기본적인 실태조사나 정확한 통계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있다지만, 단일민족이라는 허구의식 속에 우리가 국제가족 문제를 알게 모르게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1년여 후, 우리나라에는 결혼이민자의 자녀를 지칭하는 ‘혼혈인’ 문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바로 미국 NFL 슈퍼볼 MVP로 뽑힌 하인즈 워드와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의 한국 방문으로 ‘하인즈 열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자랑스러운 한국의 어머니, 그리고 한국인의 피가 섞인 하인즈의 성공스토리를 언론에서는 연일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리나라 내부의 혼혈인 문제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그냥 있었더라면 워즈는 거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어머니의 한스러운 말이 우리 가슴을 후려치고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작년 우리나라의 외국인 근로자는 33만여명, 국제결혼 건수는 2만5000여건이 넘어 전체 결혼 중 13%에 달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바야흐로 단군의 자손인 ‘단일민족’ 대한민국도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들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제가족에 대해 우리는 무관심으로 대하거나 혹은 편견을 가지고 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우선 혼혈, 피가 섞였다라는 말 자체가 순수 혈통을 더럽혔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일본 식민주의, 6.25 이후 미군 주둔과 같은 역사적 사건과 맞물려 있었고 우리는 이런 아픈 상처를 외면하려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근래의 국제결혼 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나라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혹은 몇 백만원이면 입맛대로 골라올 수 있는 외국인 신부라는 부정적인 편견이 따라붙는다.
현재 2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코시안 (Korsian)이 있고 2020년에는 신생아 중 3분의 1로 늘어날 수 있다고도 하는데, 이들에 대해 우리는 아직 건너집 남의 이야기로 듣고 그냥 흘려버리고 있다. 국제가족의 아픔을 보다듬어줄 아무런 물질적, 정신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이다.
우리 헌법 제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어느 누구도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이 얼마만큼 우리 생활 깊숙이 존재해왔는지, 차별받는 이들이 왜 제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침묵할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 사회가 인식하지 못하고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헌법 제11조 평등권 관련 조항에 ‘인종 (race)나 민족 (ethnicity)’의 명시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적극적 평등실현조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성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면서부터 남녀고용평등법, 여성발전법, 여성기업지원에 관한 법률 같은 법들이 제정될 수 있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법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됨으로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던 여성에 대한 차별이 완화되고 양성평등적 문화가 정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인즈 워드와 그의 어머니 김영희씨를 통해 우리 사회가 국제가족 문제에 대해 관심갖게 된 것은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해나
가기 위한 시작점에 불과하다.
다른 인종, 다른 문화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지금, 이제 해야 할 일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결혼이민자 자녀 및 국제가족에 대한 차별금지 및 보호를 위한 제도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제3자의 시각이 아닌, 차별받고 소외받아왔던 국제가족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담겨져야 할 것이다.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 국제결혼가정 차별금지법이나 결혼이민자 등 사회 소수인에 대한 종합대책이 반짝 이벤트에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모두 함께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위 글은 시민일보 4월20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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