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의 핵심의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 생산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첫번째 문제는 이미 북한이 극복했다고 평가된다.
둘째는 북한이 핵무기를 전략적으로 운용할 만한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다. 이번 발사로 인해 두번째 단계도 넘어서게 됐고, 북핵은 현실적 위험성을 갖게 된 셈이다. 만약 단순한 미사일만의 문제를 넘어서 핵무기의 전략적 운용능력까지 획득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국면이 아니겠는가.
이런 때일수록 평정심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응하자는 말도 백번 옳다. 그러나 왜 그토록 수많은 문제제기가 있었음에도 이토록 최악의 상황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냉철한 전략적 분석은 시작되어야 한다.
참여정부 출범 후 북핵문제는 참여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해야만 할 최우선적 과제였다. 노 대통령도 ‘북핵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것은 깽판쳐도 좋다’는 거친 표현까지 사용할 만큼 한반도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였지만 참여정부의 북핵관리는 대부분 아니 전면적 실패로 귀결됐다.
‘동북아 평화번영정책’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참여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기조이다. 늘 그렇듯이 방향과 비전은 옳았다. 하지만 관리능력 부재, 무능, 오만, 지나친 자화자찬 이런 것들이 문제였고 민심이반의 최대사유였다.
북핵문제 또한 똑같은 무능과 오만이라는 비판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유능과 무능, 오만과 겸손은 사람의 일이다. 결국은 사람이 문제였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지난 5월4일 평양 산음동에서 미사일 발사체가 평양역에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시작되었다. 1주일 지나 발사대로 갔고 60일 만에 발사됐다. 지난 1998년에도 그랬다. 20일간의 차이만 있었을 뿐, 모든 프로세스는 똑같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어디 있었는가? 외교부 장관은 어디에 있었는가? 과연 우리의 정보, 우리의 대응, 우리의 당국자, 우리의 위기관리시스템은 어떻게 작동되고 어떤 능력을 보여주었는가?
쉽지 않은 문제라는 건 안다.
북핵문제의 실질적 해법은 북한과 미국이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데 있다. 그래서 남북한 관계의 점진적 신뢰 회복과 신뢰에 바탕을 둔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서,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우리 정부만이 해낼 수 있는 외교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한미동맹 재조정 현안과도 긴밀히 연계해야 하며 동북아질서의 재편이라는 큰 틀에서 거시적이고 전략적으로 접근했어야만 했다.
우리 외교안보팀은 북핵문제의 본질을 여타 북미관계와 분리시켜 대단히 단선적인 사안으로 관리해온 잘못이 있다.
남북관계와 한미관계를 동북아 질서라는 거대한 틀에 놓고 정교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남북문제와 한미문제를 분리시켜 관리하는 듯한 잘못된 사인을 수차례 내보냈다. 자주와 동맹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자리할 여지를 만들어주고 말았다. 이런 것들이 워싱턴의 여론 악화를 가져왔고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내적 협상마저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결국 무능이었다. 총론을 전개해 나갈 각론을 갖지 못했고 전술적 능력이 부족했다. 역사 앞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는 말뿐이었고, ‘영문협상용 따로, 국내설명용 따로’라는 식이었다.
참여정부는 투명한 혁신정부를 지향했음에도 외교안보 사안에 대한 정보는 불투명, 그 자체였다.
‘반미는 곧 친북’인 냉전이념 속에서 어느새 외교안보 문제는 성역이 되어갔고, 비판 없는 성역 속에 외교안보당국자들의 무능은 감추어졌다.
이 점에 있어 분명히 지적할 것은 보수를 자칭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이다.
외교안보팀의 무능과 부실을 끊임없이 지적해온 필자의 작은 목소리는 특정 외교안보책임자를 향한 개인적 불만(?)으로 매도당한다. 강경반미자주파와 온건자주파의 대립으로 매도당했다.
자주와 동맹, 친미와 반미의 이분법적 틀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해 온 흑백논리 앞에 필자의 비판은 사장되고 만다. 이것이 지난 현실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이번 미사일 발사 강행과 관련, 북한에 대해 이번 사태가 초래할 최악의 상황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면서 내부적으로는 북한이 왜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선택하였는지에 대해 북한 핵심부의 입장을 정밀분석하고 침착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일이다.
근본적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지난 3년간의 외교안보정책에 대한 복기가 있어야 한다. 성찰이 있고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적 재검토가 요청된다. 필요하다면 인적 대안도 근본적으로 검토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전쟁의 위험, 전쟁의 공포로부터의 자유, 우리 시대가 우리 국민을 위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역사의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위 글은 시민일보 7월7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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