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제가 처음으로 참석한 IPSA 총회는 1991년이었습니다. 1994년에는 독일의 베를린에서 개최되어 참석을 하면서 동 유럽 여러 나라를 자동차로 여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1997년에는 캐나다의 퀘벡에서 개최되었는데 우리 집 아이 혼사가 있어 참석을 못했었지요. 2000년에는 서울에서 개최되었었습니다. 2003년에는 남아프리카의 더반에서 개최되어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기도 했었습니다. 당시는 제가 중앙선거관리위원이었기 때문에 남아공의 선거제도도 둘러 볼 겸 출장을 겸해 다녀왔었지요.
2006년 규슈 총회는 회원들이 약 2500여명이 참석한 규모면에서는 최대의 회의가 되었습니다. 주최측인 일본정치학회도 애섰지만 규슈현의 지사 및 후쿠오카시의 시장 등이 적극 협조를 했더군요. 후쿠오카에서는 150여명의 시민자원봉사자들이 모든 안내를 맡았습니다. 특히 개회식 후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 2000여명의 모든 회원들에게 일본식으로 만든 조끼를 하나씩 입혀서 참석시켜 분위기를 압도했습니다. 일본식으로 차린 음식상도 화려했습니다. 폐회식 때 만찬은 양식으로 차렸는데 서양인들에게는 입이 딱 벌어질만큼 잘 차린 한 상이었습니다. 손님에게 ‘과공’ 하는 것이 ‘비례‘가 될지언정 일단 손님접대는 잘 하고 보는 것이 동양의 미덕이기도 하지요.
이번 총회의 테마는 ‘Is Democracy Working?’(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이었습니다. 이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생각하는 나라나, 혹은 민주주의가 진행 중인 나라들도 모두가 만족할만한 수준의 민주주의는 작동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430개의 패널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세계정치학회 안에 다양한 연구모임(Research Committee)이 있어 소속 회원들끼리 패널을 조직하여 발표하고 토론하는 형식이 가장 많습니다. 저는 주로 지방자치와 민주주의 그리고 세계화 쪽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제가 여성과 정치였습니다. 학회에서 여성정치가 중요 연구영역의 하나로 자리잡은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주로 여성학자들이 여성정치와 관련된 논문을 쓰고 책을 내고 하지만 외국에는 오히려 유명한 남성학자들이 이 분야의 연구업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약 50여명의 정치학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규슈가 가깝기 때문에 참석하는데 부담이 좀 덜했을 것입니다. 후진국의 경우는 경비 보조가 되지만 한국은 여기서는 졸업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아마 일본은 주최국이니 말할것도 없지만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가 아니었나 모르겠습니다. 이번 학회에 가보고 놀란 것은 이제 한국학자들의 영어실력이 월등히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몇몇 학자들이나 제대로 참석하는 정도였는데 이젠 대다수 한국학자들이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아주 마음 든든했습니다.
규슈는 생각보다 훨씬 무더웠습니다. 습기 때문에 밖에 다닐수도 없고 에어컨이 없으면 지내기 힘들 지경이었습니다. 닷새 있으면서 하루 짬을 내어 학회측에서 조직한 투어를 따라 ‘아리타’(Arita)에 다녀왔습니다. 안 교수는 패널이 있어 저 혼자 다녀왔습니다.
아시다시피 아리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도자기 마을의 하나입니다. 특히 임진왜란 때 백제의 도공 이응삼씨를 데려온 이래 도자기업을 발달시켜 지금까지 그 명성을 유지해 오고 있는 곳입니다. 그를 기념하는 비석도 세워 놓고 해매다 제사를 지낸다고 하더군요. 한때 이라타 도자기는 유럽시장을 석권할 만큼 명성을 얻기도 했습니다. 그곳 도자박물관에는 일본의 도자기가 한국으로 부터 전래되었다고 써 놓았더군요. 제가 2000년엔가 나고야에 갔다가 그곳에서 아주 유명한 도자기박물관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박물관 입구 게시판에는 일본이 전 세계에서 가장 처음 도자기를 구운 나라라고 표시해 놓고 있어 일본의 비 정직성을 확인했고, 역사 왜곡의 현장을 목격한 듯한 고약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리타에서는 아직도 손으로 도자를 빗고 장작불로 구워내고 있었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도 놀라웠습니다. 한국에서 건너갔지만 일본의 문화로 정착시켜 고유의 모양과 고유의 빛깔을 재현해 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모방의 천재 일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습니다.
패널이 없는 하루 오후에 한국학자들 5명과 함께 규슈 국립박물관에도 가 보았습니다. 일본에서 네번째로 큰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작년 10월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규슈가 동아시아 물류의 센터 노릇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0년간의 동아시아 문화의 흐름을 주제로 박물관을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한반도가 그 중심에 있었던 만큼 소장품들이 눈에 아주 익숙한 것들이었습니다.
건물은 규모도 크고 돈을 많이 들인 티가 날 정도로 건축물을 친 환경적으로 잘 지었더군요. 섭씨 35도까지 올라 간 날이라 박물관도 시원하지가 않았습니다. 땀을 바가지로 흘린 날이기도 합니다. 사실 17일까지 휴가를 받아 며칠 규슈 지방을 둘러 볼 계획이었습니다만 너무 날씨가 무더워서 일정을 단축하고 귀국했습니다. 2009년 총회는 남미 칠레의 산티아고에서 개최하기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칠레는 여비가 너무 비싸서 벌써부터 걱정입니다만 열심히 저축하고 좋은 논문을 써서 참석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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