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양선생이 제기한 합작노선의 길

시민일보 / / 기사승인 : 2006-07-25 19: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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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 영(열린우리당 전 의장) {ILINK:1} 몽양 여운형 선생님, 선생님의 59주기를 맞아 선생님 영전에 삼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추도의 말씀을 올리면서 저희들의 옷깃을 다시 여미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기나긴 탄식을 남기시고 흉탄에 쓰러지셨던 59년 전이나 다름없이, 주변 나라들의 조종과 간섭이 난무하는 가운데 갈라진 남북 양측이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을 내려다보시고 계신 선생님의 심경을 어떻게 형언하실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께서 저희 후생들에게 숙제로 남겨주고 가신 ‘완전한 통일민족국가 건설’을 아직 성취하지 못한 저희들은 송구하고 송구할 따름입니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 같았던 남북관계는 최근 북측의 핵무기보유선언과 미사일 대규모발사 결행으로 파국일보직전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북측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정권전복’을 추구하는 미국과 일본의 패권주의, 그리고 그에 대항하고자 중국의 개혁개방 노선마저 일축하고 모험적 군사주의로 질주하고 있는 북측이 냉엄한 조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진전 속에서 우리 내부에서도 6.15 이후 지속된 교류협력 ·화해공존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미·일의 대북강경응징노선에 동조할 것인가를 놓고 보수와 진보, 좌와 우, 동과 서, 그리고 세대 간에 분열과 간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저희들의 가슴을 가장 섬뜩하게 만드는 일은 일본의 집권 극우보수세력이 한반도를 선제공격할 수 있음을 공언하는 사태입니다. 그들은 전쟁범죄의 대가로 부여받았던 평화헌법을 바꾸고 재무장으로 나아가는 길로 내달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시고 그 대의와 양심을 지켜나가고자 하시는 선생님이시기에,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조성된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과 화해공존의 분위기를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지켜 가셨을 것입니다. 해방정국에서 그러셨듯이 선생님께서는 목숨을 걸고 그 귀중한 싹을 지켜내려 하셨을 것임을 저희들은 압니다.

그러나 남북의 어느 한쪽이 자신만의 입지강화를 하려다가 호시탐탐 개입을 노리는 주변국들에게 빌미를 줄 경우, 다른 한쪽의 그 귀중한 싹마저 고사시키게 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께서는 당당히 설득하시고 경고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끼리’이기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배려해야만, 주변국들의 개입과 간섭을 극복하고 끝내 ‘하나된 조국’을 이룩해낼 수 있기에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말로만 ‘우리끼리’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쪽보다 상대방을 더 배려하는 마음이라야 ‘하나의 나라’, ‘하나의 역사’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시는 선생님이시기에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해방 직후 새로운 우리 정부를 준비하시기 위해 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하실 때, 일부 친일파를 제외하고 보수적 민족주의자에서부터 사회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독립운동세력을 망라하셨습니다. 열린 민족주의와 관용의 정신으로 좌우 모두를 민주적 틀 안에서 아우르는 건국노선을 제시하셨던 것입니다.

‘한반도의 완전한 통일·독립’이라는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을 제외하고는 유연하고 탄력적인, 심지어는 타협적인 입장을 견지하셨습니다. 극우파로부터는 ‘빨갱이’, 극좌파로부터는 ‘미국에 놀아난다’라는 비난을 들으셨으며 양극단이 서로 선생님을 이용하려다 여의치 않으면,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라고 매도할 때 그 능멸을 견디어 내셔야 했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동서냉전으로 세력권을 양분하려할 때, 한반도 분단의 열쇠를 쥐고 있던 미소공동위원회를 어떻게 해서든지 지속토록 노력하시고 그들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여서라도 분단을 막아보시려고 하셨던 선생님의 고뇌에 찬 통찰을, 지금은 저승에 계실 해방정국의 좌우 지도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내년은 선생님께서 통한의 운명을 맞으신지 60주기 되는 해입니다. 분단과 전란의 60여년 세월을 지나온 우리 겨레도 이제 어떤 길로 가는 것이 전쟁을 막고 분단의 세월을 화해와 통합의 시대로 열어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외세의 입김 그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자주·독립·통일보다는 분단을, 동족상잔을 택하던 해방정국의 좌우 정파들을 때로는 설득하시고 때로는 나무라시던 선생님의 합작노선이야말로 화해공존·평화통일로선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선생님께서 제기하셨던 그 길을 당당히 소리높여 외쳐야 하겠습니다. 선생님이 실천하셨던 길은 나라를 분단으로 내몰았던 인사들이 비난했던대로 ‘미국에 놀아난’ 것도, ‘빨갱이’도 아니요, 더 더욱이 ‘기회주의자도 회색분자’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강토 한반도에 삶을 이어받아온 겨레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었습니다. 죽음으로 실천하신 적극적인 겨레사랑 나라사랑이었습니다. 저희들은 그것을 ‘역동적 중도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반도적 삶의 존재양식을 온전히 담아낸 ‘실천적 의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끼리 조그만 이해타산으로 계산치 않도록 일깨워 주십시오.

우리끼리 서로 존중하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도록 일깨워 주십시오.

우리끼리 선생님의 실천을 깊이 묵상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글의 전문은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습니다.>

위 글은 시민일보 7월26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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