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왜 의원도 아닌 원외위원장끼리 쳤어? 기자들 데리고 갔으면 안전빵이었을텐데…”
기자출신인 나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이야기가 맞았다. 기자가 끼지 않았던 한나라당의 수해골프는 제명과 사실상 직무정지인 당원권 1년정지 등 ‘정치적 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기자’가 낀 ‘현 집권여당의 실세’들이 비가 물폭탄처럼 쏟아진 충청도에서 친 골프건은 슬그머니 ‘없던 일’처럼 되고 있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열린우리당 실세들이 몇몇 사를 빼고 각 언론사 안배를 골고루, 용의주도하게 한 덕에 ‘자사기자’들이 낀 방송사와 신문사는 입에 지퍼를 단 듯 입을 꽉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의원도 아니었고 당의 실세도 아니었던 한나라당의 경우 방송사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부터 뉴스까지 사흘나흘 맹렬하게 ‘특집’보도를 해댔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문사들도 자기네 기자들이 가난하지도 정의롭지도 않게 ‘수해골프’를 쳤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언론의 자유’를 스스로 반납하고 포기해 버렸다.
이런 언론이 앞으로 어떻게 정치권에 대해 비판과 견제의 기능을 다하겠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치권도 이젠 어항속에 들어간 금붕어처럼 되어 버렸다. 일거수 일투족이 ‘트루만쇼’처럼 생중계되다시피 한다. 나는 이것 역시 깨끗한 정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그 음침한 밀실에서 나와 그 헛된 같잖은 권력을 잃어버렸기에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러나 결국 ‘여권실세와의 수해골프’ 건을 지켜볼 때 그들은 결국 ‘정언유착’의 한 무리가 된 사실이 슬프기 그지없다.
참으로 슬픈 일이다. 수해골프를 친 언론사는 입을 다문다. 치지 않은 언론사의 한 데스크는 “남의 집 일에 괜히 참견하기 뭐해..… 딴 집 골프쳤는데”라며 가재는 게 편이라고 말한다.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발목 잡힌 언론’들의 행태이다. 지난번 수해 골프 때는 온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까지 서슴지 않던 언론사들이 이번에는 조용하다. 어서 이 폭풍이 ‘물폭탄’처럼 지나가길 기다리며 납작 엎드려 있는 것이다. 엎드려 있기만 해도 기막힌데 ‘여권실세’의 홍보역까지 자임하고 나섰다.
산자부 공무원들은 어제 부랴부랴 보도자료를 돌렸다. ‘정세균 장관-아침만 먹고 올라왔다’는 요지이다. 골프채도 갖고 가지 않았으며 오로지 기자들과 ‘골프 나가기 전 아침’만을 먹고 왔다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정세균 장관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수도권도 아닌 충청도까지 가서 ‘골프아침’을 먹었단 말인가? 더구나 그 충청도는 수해가 나서 난리인 곳 아닌가? 김혁규 의원, 김태랑 국회 사무총장과 기자들에게 정세균 장관이 한 역할은 무엇인가? 비유를 들자면 ‘나는 음주운전하는 아무개 옆에 앉아 있었을 뿐’이라는 것과 같다.
사회지도층에다 여권의 당의장까지 지낸 실세 중진 의원이 ‘골프아침’만 쏙 먹고 나왔으니 ‘나는 몰라요. 정말 몰라요’라는 이런 유행가 가사를 국민에게 읊조릴 수 있단 말인가?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혁규 의원 본인이 골프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몇몇 기자들은 ‘내 돈 5만원 내고 쳤다’고 한다. 그리고 ‘취재를 위해 골프를 치러 갔다’고 말한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기자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아침만 먹었다는 김혁규 의원과 2홀만 돌았다는 김태랑 국회 사무총장. 이렇게 구차스럽고 낯간지러운 변명을 해야 하나 듣는 사람도 괴롭고 부끄럽다. 다른 공무원들은 수재가 나서 얼굴이 새카맣게 되도록 물을 푸고 진흙탕에서 장화신고 뛰는데 ‘수재 난 충청도 골프’라니…. 뭐 더 할 말이 있다고 ‘변명의 디테일’에 올인하는가? 아닌 말로 한나라당의 경기도 원외위원장들은 최소한 국민 세금은 받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일단 자기 입에 자력으로 풀칠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번 열린우리당과 국회 사무총장 그리고 열린우리당 출입기자의 ‘수재골프’는 전형적인 ‘정언유착’이다. 그런데 동시에 벌떼처럼 일어나 사죄와 탈당과 징계를 요구했어야 마땅한 온갖 자칭 ‘진보’ 언론단체들은 ‘내 집안일’이므로 먹통된 녹음기처럼 찍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역시 한심하다. ‘전과’가 있으므로 우리는 구경하고 눈치 보겠다는 ‘고상’을 떨고 있다. 그렇게 당하고도 그렇게 능멸을 당하고도 아직도 ‘현실’에 눈을 못뜨는가?
한건 물었다 하면 악의적으로 상대를 짓이겨놓는 그들의 수법을 본받으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적어도 그들에게 ‘형평성’을 요구하며 철저한 진상을 밝히라는 당연한 요구를 당당히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두가 여야를 떠난 정치권의 자기 정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치부 기자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들, 국민들은 어떤 눈으로 이들을 보고 있는가? 구태와 수구를 그렇게 비판하고 공격했던 자칭 진보언론이여, 왜 이렇게 조용한가? 당신들의 그 현란한 언어는 어디로 갔는가?
서민정당과 개혁정당을 팔아 뱃지를 단 당신들의 뱃지는 이제 물폭탄으로 잠긴 골프장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무슨 이런 세상이 있나 말이다. 하루하루가 불안하다는 순하고 성숙한 우리 국민들 앞에 진정 부끄럽다. 그리고 화가 난다. 정말.
위 글은 시민일보 8월1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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