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학을 당한 학생은 인생의 한 축이 빗나가는 통에 결사적으로 학교에 매달려 퇴학만은 면하려고 애쓴다. 학교에서 사정을 봐준다면 정학처분인데 1년쯤 정학되면 1년 후배들과 같이 다녀야 하는 수모를 무릅써야 했다.
직장에서 공금을 횡령하거나 상사를 모함하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은 잘못을 저지르면 파면된다.
하지만 같은 계통의 직종에서는 이런 사람을 다시 기용할 리가 없어 결국 실업자로 전락한다.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은 방안 가득인데 가장이 돈 벌이가 없으면 어찌 되겠는가. ‘사흘을 굶으면 월장 않는 놈 없다’는 옛 속담이 그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상명하종(上命下從) 태세가 갖춰진 군대에서 자칫 불명예제대를 하게 된다고 하면 사회에서도 사갈(蛇蝎)시 한다.
군에서도 일반사회와 똑같이 부정이나 비리가 용납되지 않는다. 군 형법에 의해서 그러한 범죄는 단죄된다. 징역은 징역대로 살고 계급은 강등된 채 처참한 몰골로 제대해야 한다. 다른 이들은 소정의 기간을 모두 복무하고 명예제대로 훈장도 받는데 홀로 쓸쓸하게 군문을 나서는 심정은 어디에 비할까.
그런데 국회의원들의 중도퇴진은 어떤 경우일까.
한일협정 반대를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 등 현역의원 8명이 사퇴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다선의원이었지만 유일하게 김재광 의원이 초선의 몸으로 과감히 의원직을 던졌다. 너무나 훌륭한 명분을 살려 사퇴서를 냈기 때문에 일약 영웅의 대접을 받았고 그 뒤 총선에 다시 입후보했을 때에는 국민들이 잊지 않고 국회로 보내줬다.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온갖 못된 짓을 도맡아 하다가 쫓겨난 사람도 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에 물러나는 경우도 심심찮다.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당선될 수 없는 사람이 의원행세를 한 것이어서 그동안 받았던 세비도 반환해야 하지 않느냐 하는 말도 있지만 그것만은 면하고 있다. 다만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정치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총리나 장관으로 임명되었다가 며칠 되지도 않아서 물러나는 사람도 꽤 많다. 국무총리는 치열한 청문회를 거쳐 국회에서 인준투표를 하는데 여기서 부결되면 ‘서리’로 마감한다.
자유당 시절에도 이윤영이 서리로 끝났고 김대중 정권 때 장대환과 장 상이 연이어 인준을 받지 못하고 물러났다.
특히 장 상은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그만두고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될 것이라는 매스컴의 각광까지 받았으나 부동산과 관련하여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총리 패를 차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 국회가 좀 이상한 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총리는 인준투표를 하지만 장관의 경우에는 똑같은 청문회를 하고도 가부투표만 하게 되어있다는 사실이다.
인준투표는 부결되면 자동으로 임명이 취소되지만 장관은 가부투표에서 부결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장관 노릇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게 되어 있다. 이런 청문회는 왜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장관쯤 되면 보통 사람보다 높은 도덕성을 가져야 될 것인데 막상 청문회에서 밝혀지는 것을 보면 ‘그 놈이 그 놈이다’라는 시중의 여론이 딱 들어맞는다. 오히려 가지고 있는 직책을 이용하여 더 야비하고 치사한 행위를 밥 먹듯이 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도 그들은 눈 부릅뜨고 ‘내 잘못이 아니다’, ‘아래 사람이 실수한 것이다’라고 발뺌하는데도 선수다.
현 정권 들어서서 불명예 퇴진한 장관과 총리가 일곱 사람으로 늘어났다. 40대에 남해군수가 되었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한 때 시대의 각광을 받았으나 7개월 만에 옷이 벗겨졌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대학생들이 미군 장갑차를 점거 시위한 책임을 물어 야당에서 제출한 해임건의안이 국회에서 통과했기 때문이다.
최낙정 해양수산부 장관은 ‘태풍 때 대통령이 오페라 보면 안 되나’는 등의 가벼운 입이 화를 자초하여 열사흘 만에 쫓겨났다.
이기준 교육부 장관은 서울대 총장 시절 대기업 사외이사로 돈을 받고 아들이 이중국적자라는 이유 등으로 말썽이 일자 사흘 후에 사퇴했다.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은 부인이 위장 전입하여 부동산 투기를 했다고 여론이 나빠져 1년 1개월 재임하고 사퇴했다.
강동석 건설교통부 장관은 장남의 인사청탁과 처제의 부동산 투기 등의 이유로 1년 3개월 만에 공직생활을 끝냈다.
2년 가까이 실세총리로 명성을 떨친 이해찬은 어이없게도 골프로 물러났다.
김병준 교육부총리까지 여기에 가세하여 모두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난 것은 아쉽다. 하지만 ‘공직자는 진퇴를 분명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명언을 실천하지 못한 것은 그들의 장래를 위해서 안타까운 일이다.
{ILINK:1} {ILINK:1} 위 글은 시민일보 8월3일자 오피니언 5면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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