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는 이날 미 하원 국제관계위 한·미관계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전시작전권 환수, 주한미군 재배치 등 한미관계 현안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용산기지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GPR)나 작통권 환수 등이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임을 확인한 것이다.
작통권, 그 속에 ‘전략적 유연성’ 있었네.
반 장관은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은 9·11 이후 미국의 전세계적 군사작전을 재검토하면서 나온 것”이라며 “국민이 원하지 않는 분쟁지역에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하에 전략적 유연성에 동의한 것이고, 전략적 유연성과 작통권은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틀린 말이다. 하나는 전략적 유연성은 작통권과 상관이 있다. 이 점은 이번 작통권 환수 논쟁에서 미국 쪽 관계자들의 입을 통해 그리고 한국 외교안보 담당자들의 확인을 통해 이미 분명한 사실로 드러났고, 힐 차관보의 청문회 증언도 같은 맥락이다.
두 번째는 ‘한국군’이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한 부분이다.
여기에 대해 9월5일 외교부는 보도자료를 내고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으며, 이러한 설명은 일관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것이 참여정부의 ‘외교적 비극’이다.
물론 원문은 맞다. 그렇지만 정부는 단 한 번도 국민들에게 정확한 해석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1월 19일 양국 외교부장관간의 한·미 전략대화 직후에 나온 ‘조선일보’(1월22일자)의 제목은 ‘주한미군 해외파병 원칙적 허용, 중국과 대결 땐 한국동의 받아야’였다. 이것이 시중의 진실이었다.
필자가 맨처음 영문해석상 ‘한국군’이 가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 미군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동북아분쟁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도 여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정부는 ‘주한미군’이 동북아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특별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갑자기 반기문 장관이 ‘주한미군’이 아닌 ‘한국군’이 동북아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반기문 장관은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에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합의했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일관된 발언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필자의 해석대로라면 일관성이 있는 것이고, 지금까지 정부나 모든 언론의 해석대로라면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정부는 지금까지 이처럼 언론과 국민의 100% 잘못된 이해를 방치하고 있었을까. 아니, 왜 알고서도 그대로 두었을까? 한 마디로 왜 국민을 속이고 있었을까?
전략적 유연성 인정은 주한미군의 완벽한 자유를 보장하게 된다. 입출입의 자유가 주한미군에게는 부여되는 것이다. 더 이상 주한미군은 ‘한반도 방위군’이 아니다. ‘동북아기동군’이 되는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의 근거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당연히 그 성격이 변화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반도 방위와 미 본토방위를 상호 목적으로 한다. 주한미군은 한반도방위 뿐만 아니라 동북아 등을 비롯한 ‘전세계적 방위’를 목적으로 주둔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게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백지수표를 쥐어준 것이다. 용산기지 이전비용 전액부담청구권, 환경오염치유비용 전액부담청구권, 미군주둔비용분담금 증액청구권 등 이 모두를 ‘자주’와 ‘민족자존’이란 포장으로 미국의 손에 들려주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국민에게 알린 필자와 이종헌 외무관은 느닷없이 ‘강경반미자주파’가 되고 말았다. 주한미군 전면적 철수 위험성을 강조한 사람이 어떻게 ‘강경반미자주파’가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외교안보팀의 고충은 이해한다. 그래서 그토록 ‘발설자’ 색출에 나서야 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경향신문 그리고 한겨레신문의 사설을 제외한 전 언론의 ‘융단폭격’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미군 전면적 철수위험성을 강조했고,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강조했고, 국회의 주권을 강조했음에도 왜 그래야만 했을까.
‘증세’ 논쟁에 그토록 익숙한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왜 100억달러 이상을 퍼주게 되는 이 논쟁에는 끼어들려 하지 않았을까. 참여정부의 실책과 거짓말을 비판할 수 있는 ‘최고의 소재’인데도 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꼭 다물고 있는가.
주한미군을 언제라도 뺄 수 있는 근거를 참여정부가 만들어주고 말았는데도 왜 한나라당은 가만 있었을까. 그러다가 왜 전시작통권 논쟁에서만 이토록 호들갑을 떠는 걸까. 미군은 이미 동북아분쟁에 빠져나간 사이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도대체 작통권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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