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의 일이었다.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 중에 각자의 장래희망을 말하라면서 몇 사람을 지명하셨다. 그 친구들 중에는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기업가가 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건축가가 되겠다고 응답했다. 나는 어렸을 때는 큰 빌딩을 짓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 반의 말썽꾼인 한 친구가 “정치가가 되겠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응답해 웃음판이 벌어졌다. 몇 친구가 더 발표하고 난 뒤 선생님은 이런 뜻의 말씀을 하셨다. “모두 자기가 되려는 사람으로 훌륭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너희들이 말한 의사, 법관, 경영인, 언론인, 예술인도 다 좋다. 그런데 정치가의 길만은 깊게 생각해서 결정하기 바란다. 의사나 학자나 예술인들은 아무리 잘못해도 그 영향이 몇 사람에게만 한정되지만, 정치가의 잘못은 한 민족이나 한 시대나 한 세상을 황폐화시킬 수 있다. 정치라는 것은 그처럼 무섭다. 조심해서 선택해야 할 영역이 바로 정치 분야다.”
그때 이후로 그 선생님의 말씀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잘못된 정치지도자를 만나면 한 시대는 절단 나고 만다. 히틀러를 만난 1930년대의 독일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때 독일의 젊은이들은 히틀러에게서 새로운 미래를 보는 것 같은 환상을 가졌을 것이다. 그의 웅변에 매료되었을 것이고 그가 내걸었던 민족의 영광에 환호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는가! 히틀러 때문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반인간적으로 수용소에서 살육 당했고, 그가 일으켰던 전쟁으로 세계는 온통 황폐화되었다. 레닌과 스탈린 때문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동토의 나락으로 떨어져 죽음을 맞아야 했다.
지금도 어느 곳에서는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동상을 하늘 높이 세워놓았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영양실조로 굶주리고 있다. 위대함을 자랑하는 그 지도자 때문에 결국 불쌍한 어린이들이 굶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러한 세상이 최고라고 그 어린이들에게 집요하게 세뇌하고 있다. 정치는 처절할 정도로 무섭고 정치가는 극단적으로 사악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가라면 ‘공허한 이야기꾼이나 야바위꾼’이라는 선입관을 갖게 되었다. 정치가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고 치부해 버린다. 지금까지 정치가는 상황에 따라 아무렇게나 이야기하고 적당히 거짓말도 능청스럽게 하는 존재처럼 여겨졌고 또 그렇게 한 사람이 대정치가로 출세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정치가란 약속도 안 지키고, 선동만 하는 존재라고 여길 정도가 되어버렸다.
나는 이러한 정치가들이 오늘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으며 바로 그들이 이 땅을 ‘불신의 대지’로 몰아넣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통일도 되었을 것이고, 경제성장도 훨씬 빨리 이룩했을 것이고, 이름만이 아닌 참 민주주의도 자리 잡았을 것이며, IMF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신용카드를 남발해서 결국 국민경제를 최저 바닥으로 몰아넣는 실정도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사회적으로 조폭이 설치고 법과 정의가 뒤로 밀리는 혼돈의 세상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 대신에 성실하고 능력 있는 정치가가 일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는 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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