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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승 감독 "남녀의 사랑에 여러 형태 있단 것 알리고 싶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추석 연휴 한국 영화 4파전의 첫 주자인 영화 '푸른 소금'이 23일 서울 왕십리 CGV에서 시사회를 열고 베일을 벗었다.
'스크린의 아티스트' 이현승(50) 감독과 관록의 송강호(44), 샛별 신세경(21)의 만남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부산의 요리학원에 다니는 '윤두헌'(송강호) 앞에 스무 살 남짓한 '조세빈'(신세경)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요리와 왠지 안 어울려 보이는 두헌과 까칠한 성격의 세빈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는 남모르는 비밀이 있었다. 두헌은 서울에서 조직폭력 세계의 전설로 통했다. 그러나 그 바닥에 환멸을 느껴 조직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요리학원에 다니며 새 삶을 살려고 한다. 세빈은 전직 사격선수이지만 교통사고 이후 꿈을 접고 친구와 심부름센터를 운영한다. 두헌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되면서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그러다 상황이 돌변한다. 두헌이 조직의 후계자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결국, 세빈에게 두헌을 죽이라는 임무가 하달된다. 어느새 두헌에게 남다른 감정을 갖게 된 세빈은 이를 거부하려 하지만 지역 폭력조직 해운대파에 진 사채와 살해 협박 탓에 어쩔 수 없이 두헌을 향해 총구를 겨누게 된다.
이현승 감독은 '시월애'(2000) 이후 11년 만에 돌아왔지만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한다. 두헌과 세빈의 미묘한 감정 변화마저 빛과 색의 대비로 표현해냈다. 장면 하나하나가 '화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액션신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염전신은 영화 제목처럼 푸른 빛을 머금은 염전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며 보는 이를 무아지경에 빠뜨린다. 충남 태안 안면도의 염전에서 조명기구 등의 장비들이 소금물에 부식돼 가는 고충과 근처 군부대 전투기의 잦은 비행 소음을 견뎌내며 수려한 영상을 스크린에 옮겨 온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영화에서 그림도 중요하지만 정말 필수적인 것은 스토리다. '푸른소금'은 다행히 시나리오도 알차다. 그래서 '세빈이 두헌에게 총을 겨누지만 차마 총을 쏘지 못하다가 다른 킬러가 쏜 총에 세빈이 맞게 된다'든가, '두헌이 그런 세빈을 구하려다 죽는다'든가 하는 뻔한 스토리일 거라고 지레짐작했던 사람이라면 의외의 전개에 탄성을 내게 된다.
'그대 안의 블루'(1992),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 '시월애' 등 멜로의 대가가 만든 작품이면서도 액션이 먼저인지, 멜로가 먼저인지 모를 정도로 균형 감각도 탁월하다. 게다가 가슴 졸이는 스릴러적 요소와 함께 곳곳에 배꼽을 잡게 하는 유머도 만재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사자성어로 대신한다면 천의무봉이라 할 정도다.
송강호가 연기하는 두헌은 세빈이나 조폭 시절 오른팔 '애꾸'(천정명)과 함께 있을 때는 소년처럼 순수하고 유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조직의 보스들이나 자신을 공격해오는 킬러들과 맞상대를 할 때는 이 영화를 위해 5㎏을 감량했다는 그답게 일당백의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보여준 송강호의 수많은 매력이 스크린 안에서 살아 숨 쉰다. 2010년 550만명 흥행기록을 세운 '의형제'(감독 장훈) 이후 1년 반 만에 돌아온 스크린에서 또 한 번 기록 재현을 기대하게 할 정도다.
신세경은 세빈을 맡아 자신이 살기 위해 두헌을 죽여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면서도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복잡한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해낸다. 울프 컷의 헤어스타일과 스모키 메이크업, 강렬한 원색 스키니 진, 가죽점퍼 같은 펑키 의상 등으로 꾸민 외양이나 180도 다른 이미지나 총기 조립, 사격, 바이크 라이딩 등 액션신만으로 '신세경의 재발견'이라고 한다면 신세경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MBC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2009)이 신세경을 '핫 스타'로 자리 잡게 했다면 이 영화는 신세경을 배우로 거듭나게 하는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한다.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로 '역대 최강의 언밸런스 커플'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두 사람의 관계는 뤼크 베송(52) 감독의 영화 '레옹'(1994) 속 레옹과 마틸다처럼 '사랑'이라고 한정을 짓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 감독은 "대부분의 한국 영화에서 남녀 간의 사랑이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데 대해 반감이 있었다"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사랑이 붉은색이라면 영화에서 송강호가 사랑을 자주색, 파란색 등 여러 색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실제 남녀의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또 "나아가 영화 역시 하나의 장르에 국한되기보다 액션, 유머, 멜로, 미스터리 등을 갖게 하고 싶었다"면서 "우리 영화는 어려운 영화가 아니다. 가벼우면서도 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순간순간 격렬한 부분도 물론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행복해진다. 영화를 본 관객들 역시 이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드러냈다.
그러나 제목의 '소금'을 두고 "나는 제목의 상징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 소금은 모든 생명이 살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과하면 죽게 만드는 이중적 존재다. 세빈과 두헌의 관계도 어찌 보면 그렇다"던 이 감독의 지난 10일 제작보고회에서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영화 내내 소금에 집착한 것은 거슬린다.
또 천정명(31), 이종혁(37), 김민준(35), 윤여정(64), 이경영(51), 김뢰하(46), 오달수(43) 등 화려한 조연진이 스크린을 빛내는 동시에 내용을 산만하게 하는 양날의 칼로 작용한 것도 아쉽다.
제작 스튜디오 블루, 제공·배급 CJ E&M.
<사진설명>이현승 감독과 배우 송강호, 신세경(왼쪽부터)이 23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푸른소금' 언론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영화 '푸른소금'은 오는 9월 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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