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동성서침례교회 김우생 목사] 생애에 일어나는 일이 그 사람의 생애에 미치는 영향은 10%정도 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일어난 일에 대한 반응은 그 사람의 생애에 90% 영향을 줍니다. 어려운 경우를 당하였을 때 아름다운 반응은 그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사도바울의 생애, 그의 사역 그리고 그의 인격에서 이와 같은 “위대함”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실주의화가가 바울을 본대로 그렸다면 아마 그림 속의 바울은 “흉터와 상처”가 있는 바울이었을 것입니다. 몸의 어떤 부분은 부어있고 피멍이 들었거나 피가 나고 있을 것입니다.
1C에 노예들은 그들의 몸에 주인의 이름을 소인하였습니다. 가축들에게 주인의 소인을 하였습니다. 군인들은 부대이름이나 숫자를 문신으로 새겼습니다. 신에게 헌신한 상징으로 그들이 믿는 신을 상징하는 문신을 하였습니다. 오늘도 조폭들이 문신으로 그들의 신분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몸에 있는 흔적은 달랐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한 고난의 흔적이었습니다. 돌로 맞고 매로 맞은 흔적 얼굴의 상처 등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만이 그의 주님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심령과 태도는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고후1:8~9)
바울이 여기서 말한 “환난”은 큰 돌에 짓눌리는 압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그를 반대하는 무리로 부터 오는 압박감, 그를 해하려는 무리로부터 오는 압박감,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인 긴장으로부터 오는 압박감 때문에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았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았다.” 몹시 짓눌리고 무척 짐이 무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그가 당한 일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 하였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하늘의 시각으로 사물을 보았습니다. 그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그의 반응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는 하나님만 의뢰하였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말씀에서 과거에도 건지셨고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건저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시점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지식이나 그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살 소망까지 끊어진”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주님 저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능력도 없고 기력도 없습니다. 저는 이 압박에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헤어 나올 수 있는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주님만 바라보고 의지합니다. 하늘의 시각으로 역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환난 가운데서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반응하는 또 다른 차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용사들의 모습입니다. (히11:27)
모세는 믿음으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습니다. 바울은 모세처럼 보이지 아니하는 것 영원한 것에 초점을 두고 어려운 때를 참았습니다.
바울은 그에게 환난은 있어도 주님 때문에 그의 마음은 따뜻하였습니다. 하늘의 시각,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마음은 의심과 두려움도 다 녹여버렸습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 보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 미래에 초점을 두면 견딜 수 없는 것도 참을 수 있는 은혜를 입습니다. 바울이 가장 어려울 때 강하였던 것은 보이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연약함을 인정하였습니다
주님은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가시를 제하여 주기를 간절히 기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의 기대와는 달리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시련이 있을 때 자기 자신의 강함이나 자신의 어떤 자원에 의지 하지 않고 약함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능하심을 인정 할 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우리를 쓰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바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환난과 시련중에 바울이 어떻게 반응하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울에게는 살 소망까지 끊어진 형편이었습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습니다. 이 때 그가 배운 것은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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