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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해탄콤플렉스(玄海灘complex)’라는 문학 용어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두 과제 앞에서 고뇌하던 우리 지식인들이 처한 모순을 대변한 말이다.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하지만,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족의 자생력만으로는 넘어야 할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았다. 때문에 현해탄 너머 일본으로부터 배워 와야만 했던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로 100년 전 뼈아픈 역사를 사이에 둔 양국 해협이 다시 뜨겁다. 현해탄은 우리나라와 규슈(九州)를 잇는 통로로, 수심이 얕고 풍파가 심하다. 쓰시마(對馬) 해류가 동북쪽으로 흐르고 동해 해류가 남쪽으로 흐르며, 방어·정어리 따위의 난류성 어류가 많이 잡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천혜의 환경에 비추어 수산업 활동이 활발한 것도 당연하다
환경적 논란을 키운데는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앞서 미국 쓰리마일섬(1979년) 원전 사고,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와 함께 안전성을 내세워 탈원전를 주장하는 대표적 근거로 제기돼 왔다는데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이 밀집해 있고 인근 지역의 인구밀도 역시 높다는 점에 착안, ‘사고가 터지면 수 백만명이 끝장’이라는 ‘공포 마케팅’까지 앞세워 ‘탈원전’ 슬로건에 활용돼 왔다.
실제 지난 2016년 12월 7일 개봉된 '판도라'는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를 소재로 한 국내 재난 영화다. 이 영화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에 이어 원전 폭발 사고까지 겹친 초유의 재난 앞에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컨트롤 타워마저 흔들린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모티브는 지난 2011년 3월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일설에 ‘문재인 대통령식 탈원전 역사’의 시작점도 '판도라'였다는 주장이다. 원전 공포에 사로잡혀 탈원전을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치권의 주장은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사실 문화계의 종말 재난 영화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정치권에서 환경운동으로 변신한 앨 고어 전 미부통령도 ‘기후변화에 의한 지구 종말론’을 '투모로우'라는 영화로 시각화하여 지구의 종말이 임박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환경론자들은 이것을 받아서 지금껏 기후변화 공포 마케팅에 치중하고 있다. 어찌보면 상업주의가 강한 美헐리우드 재난 영화의 좌편향성이 증강되는 것도 대중들의 위험한 세뇌와 결합되어 정치화되어가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
9·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이 어떤 식으로 국민들을 우롱하며 정신적으로 지배했는지 숱한 과장과 조롱을 섞어 123분 동안 보여준 영화가 〈화씨 9/11〉이다. 이 영화 마무리에선 “한 번 더 속으면 바보”라는, 사실상 선거운동 격 내레이션으로 끝내기까지 한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큰 재난이 발생했는데, 청와대 등이 전혀 컨트롤 타워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정부에서 많이 봐 왔던 모습"이라며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 달라는 요구가 촛불 민심 속에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19대 대선 공약이 됐고, 대통령 취임 후에는 탈원전 정책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도 앞서 2012년 11월 11일 발간한 공약집에서도 "더이상 안전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않은 원전에만 우리 에너지를 의존할 수 없다. 단계적으로 탈원전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문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신규원전 건설 금지, 설계수명 종료한 노후원전 가동 중단 및 폐로, 안전상 심각한 문제가 있는 원전 조기폐로 검토 등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 여파에 따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의 영향인 것만은 확실하다.
문 대통령은 당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서 이듬해 6월 일본을 방문, 주일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만나 원전이 안전하지 않고, 폐기 비용을 고려하면 저렴하지도 않은 만큼 장기적으로 원전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데 공감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판도라를 관람한 후에도 문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원전이 밀집된 고리 지역 반경 30㎞ 이내에는 340만명이 살고 있어 만에 하나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라며 "원전의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는 자극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나아가 "부산 시민에게는 머리 맡에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하나를 놔두고 사는 것과 같다"며 "판도라(원전)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니라 판도라 상자 자체를 치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고 발생 과정의 과장 등 숱한 오류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리히터 규모 9.0의 대지진으로 방사능이 바닷물에 누출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달리 지진의 위험이 적고, 원자로 외관에 5중 방호벽까지 설치했기 때문에 방사능 누출 위험은 거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같은 경우인데, 이것 역시 원전만 못 쓰게 되고 주변 지역에 대한 해로운 방사능 영향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에너지에 관한 한 우리의 처지는 어떠한가. 좁은 국토에 가진 것은 없고, 그나마 생산되던 무연탄도 국내 전체 사용량의 4%에도 감당못한다. 국내 원전의 진가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탈바꿈한 뒤 본격적인 산업화로 치닫던 우리경제가 ‘1973년 석유파동’으로 치명적 위기를 맞았던 시절, 더욱 절박함에서 출발한다. 산업의 경쟁력도 원전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다른 발전원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하기에 가능했다. 유럽에서도 택소노미 가이드에 포함된 청정성 ‘탄소 제로’의 친환경 에너지원이다.
그런 문재인 대통령도 앞서 정기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온실가스의 주범은 이산화탄소다. 탄소 제로의 신한울 1호기 가동을 막으면서 이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으로 생기는 전력 공백을 신재생에너지로 메운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같이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막대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 태양광 발전과 태양열 발전은 넓은 부지가 필요하지만 국토의 상당수가 산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특성상 산을 깎고 산림을 훼손해야 한다. 풍력 발전은 소음 공해, 조력 발전은 갯벌 파괴를 일으킬 공산이 크다.
47조4000억 원. 이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발생하는 총비용이다. 최근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는 2017∼2022년에 22조9000억 원의 탈원전 비용이 발생했으며, 2023∼2030년에는 24조500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고스란히 국민 부담이다.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는 집권 5년에만 그치지 않는다. 탈원전 정책은 전원 구성(에너지 믹스)을 고비용 구조로 바꾸고 원전산업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원전의 빈자리는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채웠다. 지난 6년(2017∼2022)간 평균 정산단가는, 원전 58.2원/kWh, LNG 발전 135.1원/kWh였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와 맞물려 고비용 구조의 폐해가 극명히 드러났다. 지난해 한전 영업손실은 32조6550억 원이었다. 원전은 부지 조성부터 운영까지 10여 년이 걸린다. 그래서 원전을 제때 이용하려면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 고비용 전력산업 구조는 원전 설비용량이 제대로 갖춰지고, 전원 구성이 정상화될 때까지 유지될 수밖에 없다.
20만년의 역사에서 길게 보면 인류는 언제나 문제를 해결해왔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해 전진해 왔다. 그 인간의 상상력, 창의력의 무한 가능성을 믿는 자들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주의자들이다. 그 반대편에는 좌파 사회주의, 환경론자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과학기술 등 사실적 근거가 아니라 자신들의 신념에 근거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후자에 속한 그룹들은 정신적 강박관념 아래 놓인 중증질환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 또한 의학계의 지적이다.
탈원전은 수치로 드러나지 않는 중대한 손해도 주었다. 정부 정책의 신뢰도 추락이 그것이다. 문 정부는 원전정책을 전광석화처럼 뒤집었다. 국내에서는 원전이 위험하다며 탈원전을 강행하면서, 해외에서는 K-원전의 우수성을 홍보하며 수출을 추진하는 이중 행태를 보였다. 이러한 일방적이고 이중적 행태는 국내 원전산업계가 정부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게 했다. 현 정부가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는데도, 원전산업계가 ‘나중에 또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따라서 원전산업의 완전한 복원을 위해서는 정부 정책의 신뢰 회복이 선행돼야 한다.
후쿠시마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를 앞두고 일본방문시찰단 청문회 요구 등 민주당을 포함한 탈원전론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근거도 없는 불안과 불신으로 후쿠시마를 중심으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방안을 놓고 노재팬(NO JAPAN일본 제품 불매운동) 추억을 되살리려는 시도가 없지 않을까 수산업종사자들의 걱정이 태산같다.
EU 택소노미 통과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으로 전력자원 자급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기에 현재 각국의 탈원전 정책은 줄줄이 폐기되는 수순이다. 사실상 실패한 담론으로 평가받는 상황에서 어떠한 경제에 부담을 안기는 정치적 퍼포먼스는 자해행위일 뿐, 재고와 인내로 추후 프로그램에 대한 점검이 우선해야 할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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