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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회는 한때 여·야의 첨예한 대립 속에 국회의원에 보좌진들까지 가세해 멱살잡이·주먹다짐 같은 몸싸움 폭력이 난무했다. 그마저도 모자라 해머와 전기톱까지 동원되었다. 2011.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상정에 반대하던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러다보니 언론에서는 ‘동물 국회’라며 날선 비난을 쏟아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는 국회 선진화법이란 이름 아래 개정 국회법을 통과시켜 국회 운영을 정상화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여·야 합의 없이 상임위원회의 안건을 본회의로 회부할 수 없게 만드는 등 여러 장치를 도입해 국회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온갖 편법과 꼼수 속에 다수당 횡포를 막겠다며 도입한 국회 선진화법이 무력화 되고 있다.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를 통해 가장 중요한 제도적 장치인 안건조정위원회의 구성에서 여·야 각 3명씩 동수로 구성하도록 만든 규정을 놓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비교섭단체 몫이라며 자당 출신인 무소속 박완주 의원을 끼워 넣어 방송법 개정안을 일방처리 해버렸다.
내년 예산안의 처리를 두고 민주당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 문제를 앞세워 법정 처리시한(12월 2일)을 이미 넘겨 국회 선진화법 개정 이후로 정기국회 본회의 기간 중에 처리하지 못하는 기록을 세웠다. 다수당의 힘을 밀어붙이며 자당의 예산안을 독자로 편성해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어 예산을 여·야 합의로 처리하는 관행조차 무시하는 일당 폭주 정치를 벌이고 있다.
국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국회 선진화법을 별도의 법률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정 국회법이다. 다수당에 의한 일방적인 법안 및 안건 처리를 막기 위해 2012.5월에 국회법 개정안으로 제출해 18대 국회 임기 마지막날 통과시켜 19대 국회부터 시행한 제도다. 국회 폭력 사태와 날치기 통과가 일상적이던 막장 정치를 방지하면서 정상화를 위한 일정한 효과를 거두었다.
국회 선진화를 위한 개정 국회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안건 조정제 도입, 안건 신속처리제 통한 자동 상정 등이다. 그 내용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힘(당시 새누리당)이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총선 후 국회 본회의를 열어 통과시킨 법안이다.
1째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과반수 보다 더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재적의원 3분의 1(100명) 이상의 요구가 있으면 본회의 심의 안건에 대해 최장 100일까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무제한 토론)를 보장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종료시키려면 재적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위해서는 그 요건으로 천재지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 상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한 경우로 제한해 쟁점 법안의 일방적인 직권상정을 원천 봉쇄했다.
2째 여·야가 서로 협의해 국회를 운영하는 제도적 장치로 안건조정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상임위원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쟁점 법안에 대해 안건조정위 구성을 요구하면 여·야 동수로 위원회를 구성해 최장 90일간 논의할 수 있고, 그 조정안에 대한 의결은 재적의원 3분의 2(200명) 이상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3째 국회가 해야 할 본질적 임무를 반드시 수행하도록 안건의 자동 상정 제도를 도입해 신속 처리하도록 제도화 했다. 재적 과반수 요구로 발의해서 이후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으로 가결하면 국회의장이 해당 안건을 신속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한다. 다만 각 상임위원회와 법사위원회의 심사기일을 채우기 위해 최장 270일을 기다려야 해서 사실상 힘들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이 법을 마구잡이로 훼손하고 마비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이 개정 국회법으로 “동물 국회를 막았더니 지금은 식물 국회가 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높다. 단원제 국회를 운영하는 현실에서 다수당이 국회를 일방적으로 이끌어가 동물 차원을 넘어 야생동물의 국회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특히 지난 5월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아직까지 정부·여당의 법안처리가 0건이라 국회 사망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국회의원들은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국정운영 만은 정상으로 가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은 2024년 4월에 있을 22대 국회의원 총선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이제 1년4개월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바다가 배를 삼겨버리듯 민심의 바다가 무시무시한 응징을 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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