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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병 전 국회의원 |
요즘 정기 국회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제대로 일하는 게 아니라 정쟁만 일삼는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국회 일정을 정해 두지 않은 채 수시로 결정하며 자주 변경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찾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100일 간 열리는 정기 국회를 두고 ‘예산’ 국회라 부르지만 국정 감사에다 여러 정치 일정이 겹치면서 고성과 충돌만 거듭되고 있다. 이대로 가면 국회의원 본인들이 정한 기한도 지키지 않은 채 시일만 보내다가, 예산마저 또 다시 막판에 가서 극소수의 예결위원들이 행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거의 손보는 것 없이 통과시킬 가능성이 높다.
예산도 제때 끝나기가 쉽지 않다. 연말에 가면 내년 임시 국회를 열어 법안과 함께 처리하겠다는 논의가 갑자기 튀어나올 수 있다. 그러면서 회기 일정을 놓고 여야가 협상에 나서면서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국민들이 볼 때는 여야가 툭하면 정쟁이나 벌이면서 시간을 흘려 보내다가 제대로 일을 못해 내년으로 미룬 채 임시로 회기를 연장해서 열어 처리하려 한다고 비춰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모습이 유지되는 한 국민이나 언론에서 바라보기엔 국회가 늘 본연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곳으로 바라보게 되어 있다. 의원들 마음대로 국회를 운영하며 편하게 놀고 먹는다고 인식하기 쉽상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 국회에서 당장 없애야 할 폐단 중의 하나가 국회 일정의 전면 손질이다. 무엇보다 1년치의 국회 일정을 그 전 해에 미리 확정해 달력(캘린더)으로 펴내고 그대로 지켜나가도록 해야 한다.
정부나 기업이 일을 할 때 모든 계획과 업무처리에서 최소한 1년 단위의 연간 계획을 세워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진행하기 마련이듯 국회도 다를 바가 없어야 한다. 1년이란 기간 동안에 해야 할 주요 일정을 미리 확실하게 규정해 놓아야 하는 것이다. 정기 국회와 임시 국회를 비롯한 모든 국회 운영에서 일정 만큼은 극히 일부의 수정이나 변경을 할 경우를 빼고는 미리 규정해 놓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과 같은 거의 모든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연중 회기 제도를 운영하고 있듯이 그렇게 하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우리는 헌법 제47조에 임시 국회를 명시해 놓고 있어 개헌할 때까지 운용의 묘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법을 고쳐 그 다음해 국회 운영 일정을 그 전 해 8월 또는 늦어도 10월까지 확정하도록 규정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국회 일정을 잡느라고 들어가는 소모적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 시킬 수 있다. 의원은 물론이고 정부나 언론까지 국회 운영 일정이 명확해져 누구라도 미리 일정을 알고 그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국민들도 자신이 관심을 가진 사안에 대해 미리 국회 일정을 감안하면서 살펴 보거나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정보 접근권조차 거의 차단 되어 있는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예측 가능한 국회로 변화하게 되면서 각종 현안 또는 이해관계 사안에 대해 시기에 맞춰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미리 일정을 잡다 보면 국회의원 자신부터 편해질 뿐만 아니라 국민적 비난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 국회 일정을 미리 정해 놓기만 해도 상당 부분 일하는 국회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도 그만큼 효율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국정 현안은 물론이고 정치 전반의 주요 내용을 놓고 정책적 차원에 더 치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의 큰 폐단을 고칠 계기도 된다. 정당 지도부를 비롯한 소수에 의한 편의적인 주도를 예방하면서 의원들이 국회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여야 간의 불필요한 대립을 줄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들은 제도화 된 것과 다름없는 국회 운영 속에서 각자의 자유 의지와 합리적 이성에 따라 주요 법률안, 예산안, 정책감사 등에 집중할 수 있다.
내년 8월에 가서 2024년도 국회 일정을 확정하기를 기대해 본다. 10월에는 회기를 비롯해 본회의·상임위원회 및 국정감사 등을 포함하는 모든 운영 일정을 국회 달력에 박아 내놓아서 그 이후에는 누구라도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언제든지 검색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일은 의원들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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