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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투자에 관해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귀띔해준 말이 있다. “서울 반경 50km 이내의 땅이라면 무조건 사둬라, 나중 큰 재산이 될 터이니”. 요즘 말로 치면 한마디로 ‘근자감’이다.
자기 신념이나 확신이 워낙 강한 분이기 때문이었을까, 더구나 ‘사업보국’, ‘인재제일’을 주창했고 그 못지않게 ‘합리추구’를 기업의 모토(motto)로, 때론 경영슬로건으로 내걸었던 호암이다. 그런 그가 합리성을 내팽개친 채 그런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을 강하게 표출해 왔을까 지금껏 흘려들었다.
반세기 전, 주변에선 귀담아듣지 않고 수근댔던 호암의 말뜻을 ‘메가서울’, ‘메가시티’ 논란이 거센 이쯤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아득한 세월 미급에 닥칠 오늘의 세상, 나라의 미래 발전상을 내다본 것이다. 지금의 고속도로 사정도 마찬가지다. 훗날 차례로 대통령직에 오른 두 전직조차 선봉에 섰던 저지 투쟁을 뚫고 일궈낸 대역사다. 건설반대의 거센 민심에도 “이조차도 좁아 미어터질 테니 두고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호기는 직관과 통찰에 근거한 추진동력이었다.
경부고속도로는 건설 당시 왕복4~8차선이었다. 건설 25년만에 서울-천안 구간만이라도 왕복5~10차선으로 증설해야 했다. ‘93대전엑스포’ 개최준비에 수송대책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지방에서 열기로 한 최초 국제행사다. KTX가 없던 시절 기존 차로증설만이 유일한 대안, 막상 실행에 돌입한 당국은 또한번 놀랐다. 고속도로 건설을 둘러싼 거센 야당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가변차로 양측에 넉넉한 부지를 확보해 둔 박 대통령의 선견지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 메가시티 서울은 침체된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수 있을까 논란이다. 미래에 대해 일반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아이디어를 가지기 쉽지 않다. 허나 대부분의 가치가 만들어지는 곳은 대중과의 다른 미래에 대한 생각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앞선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수도권 편중 심화 우려와 지방소멸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자 여당 소속 광역단체장들도 반대와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 김포구’ 입법을 위한 당 특별위원회는 ‘메가시티 서울’ 간판 대신 ‘뉴시티 프로젝트 특위’란 광폭의 이름을 달고 출범했다. “서울·부산·광주 3대 메가시티를 키워 국가 균형 발전을 하자는 것”(조경태 특위 위원장)이라지만, 역풍을 의식한 성격이 짙다.
하지만 서울은 비좁다. 국내외 주요 도시에 비해서도 면적(605㎢)은 턱없이 좁아 서울의 부동산값이 올라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예로 중국 베이징(北京)의 면적은 1만6808㎢, 상하이(上海) 8240㎢, 도쿄 2102㎢, 런던 1580㎢ 등이다. 인구 대비 면적을 보면 베이징은 서울에 비해 인구가 1.5배지만 면적은 27배, 상하이는 인구가 1.8배지만 면적은 13배나 된다(중국통계연감). 서울은 울산에 비해 인구는 10배나 되나 면적은 고작 60%다. 그만큼 가용면적이 좁아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뻔한 이치다.
서울은 1963년 이후 면적이 거의 그대로지만 인구는 3배, 가구 6배, 소득은 10배나 증가했다. 주간활동인구(국내외 관광객 등)나 외국 기업 경영인의 수적 증가도 감안하면 서울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토지 공급량은 동일한 상태에서 수요만 급증하니 부동산값이 안 오를 수가 없다. 특히 강남 지역은 심각한 편이다. 이에 따른 부작용은 이루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큰 문제인 저출산과 높은 집값도 국토의 효율적 이용과 관련 있다. 지자체 간 협력구조를 만들어 함께 산업을 키우고 광역 교통망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행정구역 편입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과거엔 지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세금 인하 등 금전적 혜택을 줬지만, IT 산업이 발전하면서 인재가 중요해졌다. 교육과 산업이 함께 선순환할 수 있는 메가시티를 만들어야 한다.
메가시티와 균형발전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같은 문제를 놓고 유사한 해법을 보이면서 다분히 총선을 앞둔 주도권 싸움에 날을 지세고 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5극 3특 체제’가 사실상 국민의힘이 지향하는 ‘메가시티’와 다를 바 없다. ‘5극 3특 체제’는 서울 등 수도권과 충청,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호남권을 5대 메가시티로 재편하고, 강원, 제주, 전북·새만금 3곳을 특별 권역으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이다.
한국은 세계 4대 고속철도 기술 보유국이다. 곧 시속 400㎞ 이상을 주파할 고속철도가 가능하다. 그렇게 되면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을 갈 수 있고, 전국을 하나의 도시로 만들 수 있다. 수도권 집중, 서울의 극심한 용지 부족, 행정수도, 지역균형 개발 등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사실 휴대전화 사용 등 광대역 정보통신망의 발달 면에서 보면 이미 서울과 지방의 구분이 없다. 전국은 이미 일일생활권이 된지 오래이지 않는가.
서울은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국제도시다. 한국에서 경쟁력이 최고인 수도권의 성장을 원형도시에 집착해 계속 억제만 할 것이 아니라 천안을 넘어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시대를 맞아 한국의 국토 이용도 최소한 미국 수준으로 시장경제원리에 따라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글로벌화 시대의 조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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