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우의 인물채집] '리송'은 꿈꾸는 낙타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3-06-14 16: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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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송이라는 사람을 마주쳤을 때 의도치 않은 질문을 던지게 됐다.

"화보에서 본 사람과 어찌 이리 똑같은 표정일까요? 내가 촬영 현장에 '쑥' 들어온 것 같네요."

처음 본 그네가 늘 보아왔던 사람처럼 웃으면서 답했다.

"세상은 무대이고 나는 배우, 이젠 익숙해져서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진지하게 유쾌해요."

화보 속에서 보았던 그네처럼 웃고 말하고 손뼉치고...

이 순간도 카메라를 대면 화보가 될 듯 한데, 그네의 목소리에선 때때로 현악기의 아련한 음색이 바람처럼 스쳤다.

▲2021년 MBN ‘오래 살고 볼 일, 어쩌다 모델’ 출연 2019년 제 1회 KMA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 65+ 최우수상, 우정상 2019년 현대백화점 패셔니스타 TOP 10 선정 2021년 캐나다 밴쿠버 패션위크ㆍ2022년 한국모델협회 시니어모델 초대 분과위원장.


나이 70에 비로소 진짜 이름을 얻은여자의 현재 모습이다.

'리송'ㅡ오랜동안 함께 살아온 남자의 성과 자신의 성을 한자씩 합쳐서 그 이름을 정했다.

엄마로 아내로 할머니로 살아온 자연인 '이해자'라는 허물을 벗고 '리송'으로 깨어났다.

누군가 그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첫사랑인 그들의 영혼이 함께 있음을 느끼는 걸까? 아마도...

그네의 짧고 히끗하고 꼿꼿한 머리칼에서 범접할 수 없는 지배력이 보인다. 그리고 흰 깃발이 바람에 날리듯 '후드득' 웃어버리는 상쾌함이 이름값을 한다 싶다.

약학대학을 나온 그네가 1년 반 동안 약국을 했다는데 대체 무얼 팔았을까?

큰 길에서 약국을 두개나 지나쳐야 도달할 수 있는 그 골목끝 약국에서는 진통제도 박카스도 잘 안 팔렸을 거다.

진통제가 아니라 '소통제?'를 팔았을 듯, 약학대학에서 절대 가르치치 않는 처방으로 그런 용도의 약을 조제해서 열심히 팔았을거다.

잠깐동안만 했던 이유도 알만했다.

세상사람들이 '소통'보다는 '진통'을 원했을 테니까!

세상사람들이 많이 아프다는걸 알게 된 그네는 집으로 돌아가 두 딸과 아들과 아버지같은 친구이고 때때로 막내아들 같은 남편을 아프지 않게 지켜냈다.

"하늘이 주신 네식구들을 잘 양육해서 돌려드리고 칭찬받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그네의 목소리에서 몽환적인 현악기의 음색이 불협화음으로 겹쳐진다.

아! '마두금!' 몽골의 사막에서 해질녁에 마두금의 연주를 들으면 누구나 눈물이 난다.

사람만 그런 건 아니다. 바람의 흐느낌 처럼 느껴지는 '마두금'은 따뜻한 슬픔을 속삭여 살아있는 것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낙타의 눈물'이라는 다큐가 이걸 찍었다. 고통 끝에 난산한 낙타가 새끼를 학대하고 방치하는데 새끼낙타를 받아낸 몽골아낙이 어미낙타에게 '마두금'을 들려주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새끼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린다.

이 영화는 57회 미국 감독 조합상(다큐)과 39회 카를로 비바리 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그러나 관객의 눈물은 어떤 상 보다도 순결한 상이다.

'리송'으로 불리는 인생연기자이자 연출자에게 '마두금'을 선물 하자고 맘을 먹었다.

뜬금없이(?)는 아니다. 씨줄 날줄이 망사처럼 들여다 보이는 교복을 입고 학교를 오가고 한번도 책상을 가져보지못한 맏딸로 살아온 그네의 삶이 그 새끼낙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엄마의 무관심이 "오로지 내탓일까?"를 고민했을 정도로 방치를 경험한 그네에게 이젠 들려줄 아무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두금'이 위로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사막에서 찍은 그네의 화보와 영상이 너무나 강렬했던 걸까? 

그네에게서 낙타의 눈이 보이고 목소리의 사이사이에서 정체 모를 현악기의 음색이 느껴졌었다.

일단 담달에 몽고에 '마두금'을 사러 가기로 맘먹고 다시 물었다.

절대권력자인 아버지와 선생님인 엄마에게 방치되었을 때 그네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남았을까?

오직 해바라기 꽃만 좋아한다는 그네의 말에 가슴이 아리다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 한가운데 나뭇잎같은 배위에 내가 있었어요. 너무나 멀리있지만 오직 빛만 바라봤지요. 어둠은 나를 익사시킬 수 있지만 스스로 빠지지 않는 사람을 어쩌지는 못한다는걸 그때 알았어요. 나중에 나를 지켜준 마법의 주문이 있었다는걸 알았지요. '심미안이 있다!' 선생님이 써준 이 여섯글자가 지금까지의 나를 만들었어요. "

아마도 "너는 마음 속에 아무도 갖지못한 눈이 하나 더 있다"라는 말로 오해를 한 거 아닌가 싶다.

그네에게 신통한 눈을 하나 선물해 준 그 선생님은 지금 그 눈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신통하게 살고 있는지 알고 계실까?

'열려라 참깨!' 말고도 세상을 열 수 있는 마법주문이 꽤 많이 있다는건 참 좋은 일이다.

리송은 성인이 되면서 세상에서 기준이 되는 사람으로 살았다. 여자는 여자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할머니는 할머니 답게, 그리고 지금은 모델답게, 배우답게, 아내답게 살고 있다.

'리송답게'는 물론이고 '엄마답게'도 좋은 성적표를 유지하고 있다.

첫째 딸은 연대를 졸업하고 다시 서울대가 아니라 한예종을 선택해서 미국에서 지휘를 하는  교수가 됐고 둘째 딸은 한예종을 선택하더니 연극학 박사가 되서 잘 살고 또한 베트남에서 사업잘하는 경영학도 막내아들이 있으니 성적은 트리풀 'A'다.

변명하기 싫어서 거짓말 안하고 살아온 그의 성품대로 살아준 아이들이 고맙고 선택하면 되는 서울대를 포기한 딸이 후회없어서 좋고 베트남에서 사업하는 막내아틀이 젠틀해서 좋고 겁나게 코골지만 잘자고 씩씩하게 일어나는 남편이 손뻗으면 닿는곳에 늘 있으니 참 좋다.

이 대목은 여지없이 아줌마 대사들이라 뭉뚱 그렸고 사실 '리송'이라는 사람은 종교적인 연이 깊은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막에서 찍은 화보에서 사막의 끝을 바리보는 그네의 눈빛에서 '메카'를 향한 '칼리프'의 진중함을 본다.

하루에 5번씩 메카를 향해 의식을 하는 이유가 사막에서 메카의 방향을 잃으면 모두 다 죽는다는 절박함에서온 의식임을 그네는 아는 걸까?

사막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다. '리송'은,

낙타의 눈을 닮은 여자, 사막 어디에 서 있어도 

메카의 방향을 본능으로 알 것 같은 사람, 아픈사람을 양산하는 세상에서도 '진통제'보다는 '소통제'가 필요하다고 믿는 유일한 약사, 무엇보다도 아직도 "나는 '심미안'이라는 눈이 하나 더 있어!" 라고 믿는 아직도 좀 모자란 칠십세 철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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