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병, 할말은 한다] 국회가 실제로 예산 편성권을 행사해야 한다

시민일보 / siminilbo@siminilbo.co.kr / 기사승인 : 2022-11-02 16:30:24
  • 카카오톡 보내기
  • -
  • +
  • 인쇄

 현경병 전 국회의원
현경병 전 국회의원



올해 우리나라의 예산이 607.7조원이다. 내년에는 640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웃 일본의 경우 2022회계연도 예산이 107.6조엔으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115.5조원 정도가 된다. 일본의 이 예산은 10년 연속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한 엄청난 규모다. 일본의 인구가 올해 기준으로 1억2395만여명에 이르러 우리가 5173만여명인 것과 비교하면 2.4배 가량 많은데 비해, 신기록까지 세운 일본의 예산이 우리 예산 보다 1.8배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얼마나 예산을 폭증시켜 왔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국회가 예산 편성 과정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국회의원들은 할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정쟁이나 벌이면서 싸움만 하는 곳으로 비난받고 있다. 그러면서 국민이 전혀 권능을 위임하지 않은 행정기관들이 거의 전적으로 예산을 편성해서 관철시키고 있다.


사실 입법부가 가진 가장 실질적인 권능이라면 법률 제·개정권과 함께 예산 편성권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에서는 예산을 법률로 다룰 정도로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의회가 그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어벤져스에서든 어떠한 특수 작전에서도 예산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에서는 정부가 아니라 의원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행정부가 전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실정이다. 방대한 예산은 물론이고 연기금, 국유재산, 국채 등을 포괄하는 재정 전반을 정부가 관장하고 있다. 예산 총괄부서인 기획재정부의 주관 아래 중앙부처별로 산하기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 걸친 방대한 예산을 편성한다. 그 과정에서 다음 해에 운용할 실질적인 예산을 거의 대부분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비록 국회에서 정부의 편성안을 놓고 심의와 의결을 한다고는 하지만, 지극히 형식적인 역할에 그치고 있다. 매년 정기국회가 열려 ‘예산국회’라 불리며 국회를 거친다지만 다분히 의례적인 절차 정도로 치부되며 수박 겉핧기 식의 논의 속에 일정에 쫓겨 정부안 대로 통과시키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저도 여·야 간의 공방으로 인해 시간을 끌다가 예산에 대한 제대로 된 내용 파악조차 못한 채 처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국회의원들도 정기국회 일정이 거의 지나고 나서야 예산을 살펴본다며 관심을 기울이는 듯 하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져 시간에 쫓긴 채 요식적인 절차만 거쳐 끝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행정부는 쟁점이 되거나 문제 제기를 하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지역구나 이해관계가 걸린 예산을 배려해 주면서 국면을 넘어가기 일쑤다. 또한 예산이 정부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대통령의 힘을 빌어서라도 (대통령실의 전방위적 역할까지 작용하면서) 여당을 압박해 통과시키도록 만든다.


심지어 국회에서 손질하거나 깎는 예산이라고 해야 아무리 많이 잡아도 1~3% 정도인데, 정부의 예산 당국과 담당자는 그마저도 전체 예산을 짤 때 미리 감안하여 예산안을 편성해 제출하기 때문에 손대나마나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국민주권주의에 근거해 국민이 전혀 위임하지 않은 행정기관들이 본래 권능을 부여한 위임자들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전적으로 수행하며 집행까지 독점하는 것은 분명히 비정상적이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이 선출해 대표권을 위임한 의원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개헌을 통해 이러한 원칙을 결정하기 전에라도 국회 차원에서 내실 있는 예산 편성 권한을 최대한 행사해야 맞는다. 그러자면 의원들이 소위원회와 담당 분야를 중심으로 해당 예산을 맡아 1년 내내 살펴보도록 제도화 해서 국회를 운영해야 한다. 또한 예산의 편성은 물론이고 집행 과정과 그 결과인 결산에 대해서도 충실하게 따져 보는 절차와 관행을 확립해 가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